안분낙도

스스로 이치를 터득하라

Abigail Abigail 2025. 4. 12. 22:00

스스로 이치를 터득하라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학문을 깊게 함에 있어 올바른 방도로 하는 것은 이치(理致)를 스스로 터득하고자 해서이다.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게 되면 처신하는 데에 편안하고, 처신하는 데에 편안하면 삶의 깊이가 깊어지니 그걸 크게 활용할 수 있고, 크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일상의 좌우(左右)에서 취해도 그 이치의 근원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군자는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려고 하는 것이다.”하였다. [孟子曰(맹자왈)君子深造之以道(군자심조지이도)欲其自得之也(욕기자득지야) 自得之則居之安(자득지즉거지안)居之安則資之深(거지안즉자지심)資之深則取之左右(자지심즉취지좌우)逢其原(봉기원) 故(고)君子(군자)欲其自得之也(욕기자득지야).]』<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14장>.

 

이와 관련,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이 이치(理致)를 하늘이라고 말하면서 반드시 이 하늘의 이치를 따라서 살아갈 것을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이경여 등이 상차(上箚)하기를,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理致)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仁慈)하여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먼저 견책(譴責)하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罰)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부하면 이 하늘의 이치 즉 하나님의 섭리, 영원한 진리를 터득할 수가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바는 “누구도 진리를 그대의 머릿속에 집어 넣어주지 않는다. 진리는 다만 그대 스스로가 그대의 힘으로 찾아 내야하는 것이다”라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말이다. 성경에서 누차 경고한 대로 세상에는 사이비 선지자와 이단자(異端者)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면, 우리는 먼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상 성현(聖賢)들의 불멸의 말씀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자연의 이치를 탐구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 백강 이경여 선생은 임금에게 아래와 같이 성학(聖學)에 힘쓸 것을 권면하였다.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그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1653년 효종4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의 상차문(上箚文) 에서>.

 

학문의 길에는 그 어떤 지름길도 없다. 학문은 결코 책과 이론, 세상의 학벌(學閥)같은 것에 국한 되지 않는다. 학문의 길은 위에서 말한 탐구활동에 더하여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세상만사를 경험하면서 점차로 완성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가 학문을 좋아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해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먹을 때 배부르길 바라지 않고 거처할 때 편안하길 바라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은 신중히 하며, 도(道)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옳고 그름에 대해 질정(質正)을 받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학이 14장).” 하였다.

 

2025. 4.13.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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