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불안을 극복하는 길

Abigail Abigail 2025. 4. 16. 22:40

불안을 극복하는 길

 

오늘날 우리사회를 ‘불안의 사회’라고 일컫는다.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세계도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매스컴과 유언비어(流言蜚語)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우리의 처지를 더욱 부추긴다. 불안은 자동차가 오일이 떨어져 갈 때에 오는 붉은 신호와 같다. 몸이 그 신호를 자각해서 생기는 조건반사와 같다. 때를 따라 임하는 불안에 제대로 대처하지를 못하고 불안이 깊어지게 되면 마음과 몸이 병들게 된다. 그 병이 깊어지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불안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도 하였다. 그에 있어서 인간의 불안은 원죄(原罪)를 지은 아담(Adam)이후 인간들이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을 잃으면서 온 인류의 숙명처럼 필연적인 것이 되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를 향한 열망, 신앙에 의해 극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이런 불안을 다음의 4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이다.

둘째는 본능을 만족시킨 후에 오는 허망함에 따른 신경질적인 불안이다.

셋째는 양심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도덕적인 불안이다.

넷째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영적 종교적인 불안이다.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제대로 극복하지를 못하여 술이나 마약을 찾곤 한다. 어떤 경우는 불안한 감정이 정신병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불안을 극복하여 나가는 가장 확실하고도 좋은 길이 있다. 그것은 하늘의 이치,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하신 자신의 사명, 자신의 일을 찾아 그 일에 인생을 투자하는 길이다. 하늘이 부여한 자신의 사명을 찾아서 이에 자신의 삶을 몰입(沒入)하는 길이라고 할 것인데, 이는 위에 언급한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생각과 맥(脈)을 같이 한다.

 

이 길을 찾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하늘의 복을 받아 성공한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도 이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그 자체로 실패한 인생이다.

 

우리가 이 길을 찾은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서고금의 불멸의 성현(聖賢)들의 말씀을 매일매일 자주 접하면서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편 1-3절).

 

이와 관련, 특히 새벽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자손들에게 권면하기를 “일찍 일어나서 정신을 가다듬고 ···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집중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공경하여 신명(神明)을 대한 것 같이 배운 글을 복습하여 많이 읽고 깊이 연구하여 참뜻을 찾아내고 글자의 음과 글 뜻을 세밀히 분석하여 환하게 통하도록 하되, 너무 급히 하지 말며 성현(聖賢)의 훈계를 직접 모시고 지도를 받음과 같이 하고 ··· 진리가 몸에 배이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임금에게는 성학(聖學)에 몰두하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그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1653년 효종4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 상차문(上箚文)에서>.

능호관 이인상 선생, '소용돌이 구름'

2025. 4.17.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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