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학(爲己之學)을 넘어서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이 말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로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 공자가 자신의 일평생에 걸친 공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述懷)하였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자립하였고, 마흔에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명령을 알았고, 예순에는 귀로 듣는 것이 거슬림이 없게 되었고,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심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논어 위정편(爲政篇)>.
여기서 우리는 공자의 공부는 오늘날의 공부와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공부가 사물의 분석과 지식의 축적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면, 공자의 공부는 자신의 내면으로 그 중심이 쏠려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공부가 지식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외적 성취를 추구한다면, 공자의 공부는 자아의 성찰을 통한 내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에서는 전자를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 하며, 후자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한다.
공자는 젊은 시절, 오늘날 우리가 주로 공부하는 모습과 같이, 돈을 벌기 위하여 회계 공부를 하고 회계·출납담당자의 직업을 가진 적이 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공자도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의 공부의 어떤 부분은 이처럼 생존을 위해서 쓰이기도 하였으니, 그는 소위 ‘위인지학(爲人之學)’도 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공부는 근본적으로 자아의 내면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소위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었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본 15세의 ‘지학(志學)’에서 70세의 ‘종심(從心)’에 이르기까지의 공자의 공부 역정이 그의 이런 ‘위기지학(爲己之學)’의 면모를 잘 말해주고 있다.(이영호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
공자의 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은 공부를 하는 순간이 바로 내면의 자아(自我)가 자라고 성숙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공부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자아가 자라고 성숙하는 시간이요, 자아의 자라고 성숙함은 매 순간 내면의 깨우침을 통한 즐거움과 기쁨을 동반한 것이었다.
공자의 이런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는 위대하다. 그러나 내가 곰곰이 생각건대 가장 위대한 것은 세상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세상만사를 섭리(攝理)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 항상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삶의 소망과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공자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도 모두 그 안에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인데, 유한한 인간의 공부가 무궁한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다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진리이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내면세계의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 갈 때에만 세상살이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생기며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어 참다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영혼을 부여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만족이 없이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그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장 11절).
2025. 3.30.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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