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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학사상 의 메시지

Abigail Abigail 2022. 2. 12. 19:27

예학사상(禮學思想)의 메시지

 

사계 김장생 선생은 조선 예학(禮學)을 정비한 한국 예학의 종장(宗匠)이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국가정신과 사회발전의 방향을 정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김장생 선생이 이처럼 예론(禮論)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모든 인간이 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을 예(禮)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장생의 사상에 있어 어짐(仁)과 바름(義)은 도덕과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예는 올바른 마음과 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태도와 절차이다. 때문에 예는 어질고 바른 것이어야 하지만, 어질고 의로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예라는 방법을 통하여 표현되어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복잡한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밝힌 것이 예(禮)인 것이다. 따라서 김장생은 예를 행하는 형식은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상이 변화함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김장생을 "고금의 예설(禮說)을 취하여 뜻을 찾아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하였다." 고 했다.

 

김장생 선생은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면 국가가 혼란해진다고 하여, 예(禮)를 국가 치란(治亂)의 관건으로 보았다. 즉 김장생의 정치사상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治國)이란 인간사회의 조화를 성취한다는 목표가 가장 우선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가르쳐 예절 바르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예교(禮敎)와,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정치(政治)를 일원화(一元化)시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국민들의 예에 대한 인식수준은 어떠하며 우리들의 이런 수준의 예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우리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특별히 우리나라의 현 정치권에서 이러한 예교(禮敎)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하는 바가 있는가? 대답은 매우 부정적일 것이다. 이러니 우리 정치수준과 국민행복지수가 후진 수준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김장생 선생의 예학과 정치사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사회의 사회질서와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실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에게 김장생 선생의 사상을 그대로 적용시키려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일 것이다. 그러나 김장생 선생은 예(禮)의 본질에는 변치 않는 덕목(德目)이 있는 반면,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예(禮)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학(禮學)의 근본정신과 그 실천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이며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장생 선생을 주축으로 한 17세기 우리나라 예학사상은 우리 전통예제(傳統禮制)의 근간을 이룩했다는 학문적 평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 후손들에게 전통 예학사상의 근본과 실제를 기본으로 이 시대에 맞게 창조적으로 이를 발전시켜서 나라의 발전과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생각건대 예(禮)를 지킴은 마치 윤활유를 치는 것과 같아 우리가 삶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윤택하게하고 살맛나게 하는 것이며, 예가 무너지면 금수(禽獸)나 마찬가지가 되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오직 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살벌한 세상이 될 것이니 우리 모두는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예제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맞는 발전된 예학(禮學)을 확립하고 모두가 실천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세종대왕이 당시로서는 최고의 윤리규범인 삼강오륜을 모든 국민이 배우고 실천하도록 가르침 바탕으로 하여 전무후무한 태평성대를 이루신 것은 아주 좋은 사례이다.

 

2022. 2.12. 素淡

 

* <김장생(金長生) : 1548∼1631> : 호는 사계(沙溪). 조선중기의 정치가, 예학사상가. 선조 말과 광해군대에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으며 1613년(광해군5년)에는 서얼들이 일으킨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의 위기를 맞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그 후 관직을 포기, 연산으로 낙향하여 예학연구와 후진양성에 몰두하였음. 인조반정 이후 여러 관직을 제수했으나, 번번히 사양하였음. 저서로는《가례집람(家禮輯覽)》,《상례비요(喪禮備要)》,《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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