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무심(無心)의 경지(境地)를 넘어서

Abigail Abigail 2019. 1. 28. 19:57

무심(無心)의 경지(境地)를 넘어서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안회는 자기가 좌망(坐忘)”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니 공자가 좌망의 뜻을 묻자, 안회가 답하기를 좌망이란 오체(五體)에서 힘을 빼고, 일체의 감각을 없애고, 몸도 마음도 텅 비워서 도()의 움직임을 받아드리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의 움직임을 받아들인다면 시비선악(是非善惡)의 감정에 구애됨이 없이 도()와 함께 변화되어 무한(無限)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일본 막부시대 말기의 인물인 까쯔 카이슈(勝海舟)는 말하기를 좌망, 즉 무슨 일이든 완전히 잊어버리고 마음의 속이 훤히 밝아져 한 가지 일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어야 비로소 자유자재의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의 저서 氷川淸話에서).

 

결국 이 좌망이란 무심(無心)의 경지(境地)’ 즉 잡념을 제거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특히 지도자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이처럼 자신을 무심의 경지, 무아(無我)의 상태로 가져갈 필요가 절실(切實)하다.

 

이와 매우 유사한 개념에서 장자(莊子)’이 무심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어떤 사태에서도 유연하게 대응 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기게 된다.”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좌망과 무심의 경지에 대한 논의들은 유한(有限)한 인간들의 이성적인 사유(思惟)의 산물로서, 이것은 궁극적으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한 단면(斷面) 정도의 것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나님의 도()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 차원의 만사형통(萬事亨通)이 우리 삶에서도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 마음속으로부터 샘솟는 기쁨과 평안, 내세(來世)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는데, 좌망이니 무심의 경지와 같은 인간들의 철학적인 논의(論議)에서는 결코 이런 놀라운 모습들을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19. 1.28.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