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가장 친밀하게 지낼 것인가
사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이를 지켜 나가는 길은 바로 자신의 생명의 길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지혜의 대명사 솔로몬 왕은 말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 마음을 바르게 하여 강하게 지켜나갈 것인가? 이에 대해 히브리서 13장 9절에 이르기를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게 하는 것이 좋고 음식에 대한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규정에 얽매인 사람은 아무 유익을 얻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 마음을 바르게 지켜나가고자 하면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하나님과 그 누구보다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가야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어갈 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우리가 어떤 주어진 규정들을 지킨다고 하여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기독교가 이 땅에 전파되기 이전에 이런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백강 이경여 선생이 평소에 성인(聖人)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으로 체득(體得)하는 공부에 힘써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으니 놀랍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利慾)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으로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백강 이경여 선생, 1653년 효종4년 7월 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생각건대 우리가 참으로 가치 있고 영생(永生)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아울러 불멸의 성현(聖賢)들과 평소에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친근히 대화하며 그들의 말씀을 몸으로 체득하려는 노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즐거움을 찾아야할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이 그의 친구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는 요한복음 15장 14-15절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2024.12. 6.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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