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약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라

Abigail Abigail 2021. 3. 9. 08:52

약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라

 

인간은 연약하여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로 누구나 알고 보면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여 마음을 비우게 하신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가르침과 강점들을 찾아내서 창조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困苦)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는 고린도후서 12장9-10절에서의 사도 바울(St. Paul)의 고백이다.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사도 바울의 이 고백처럼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지는 은혜, 약할 때 도리어 강하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가 임하는 줄로 믿는다. 내가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붙들려 살아갈 때 약한 나는 강하게 변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옵소서”하는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정직한 마음의 자세로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진리를 신봉하고 나아가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도 바울은 물론 인류 역사에서 이미 수없이 입증되어온 바이다.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론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여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도(道)와 의(義)로 채우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서 부동심(不動心)의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강한 대장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맹자는 마음을 바르게 함과 관련하여 ‘외계(外界)의 사물이나 정세(情勢)의 변화에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인 “부동심”을 말하면서 이를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다. 맹자는 이를 기르는 방편으로 호연지기를 거론하였는데 이것은 도와 의가 있어야만 존재하며 우리의 마음에 꺼리는 것이 있으면 이 호연지기는 사라진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맹자에게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임하여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비워 그 곳에 도와 의 즉 하나님의 진리를 채워 넣어야 비로소 강한 사람, 대장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백강 이경여 선생이 효종대왕에게 한 다음의 말씀에서도 이런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1653년 효종 4년 7월2일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主宰)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경중을 재제(裁制)하는 일을 거론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기한 것만 일삼고 고원(高遠)하기를 힘쓰며 몸과 마음에 절실한 생각이 없이 옆으로 굽은 길을 달려간다면, 버려두고 게을리 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치가 이미 밝지 못하니, 어찌 보탬이 있겠습니까.“

 

위의 백강 선생의 말씀을 요약하면 사람의 약함, 이욕을 버리고 나서 그곳에 올바른 학문으로 채워 넣어야 즉 성인의 가르침을 몸으로 받아야 비로소 강한 사람인 만화의 주재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021. 3. 9.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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