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所望)이 주는 기쁨
인간의 기쁨의 원천은 소망에 있다.
희망을 상실한 인간은 겉으로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 마음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은 없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윗은 말하기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부터 좇아 나는도다 (시편62편5장)”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영혼을 불어 넣어 창조한 인간이 끝없이 하나님을 동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이렇게 그의 영혼이 올바로 놓이지 않는 한 인간은 참된 기쁨을 찾을 수가 없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이에 부응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내면세계의 기쁨은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과 염려를 극복할 수가 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신자(信者)들은 언제나 깨어있어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걱정들은 물러간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이 말하기를 “기쁨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난 후에야 취득된다”라고 한 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온갖 세상의 탐욕들을 버린 연후에야 비로소 참된 기쁨이 찾아든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 요한1서 2장15-16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한편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오기 전 우리 선조님 한분도 이를 간파하고 말씀하시기를,
“사치(奢侈)함과 호화로운 것은 여러 가지 악(惡)함의 근본이요, 모든 값진 장식품도 역시 좋은 뜻을 손상(損傷)시키며, 백가지 구경을 좋아하는 함 역시 뜻을 상하게 하는 것이요, 음란(淫亂)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女色)은 가장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이니 굳게 방비(防備)하여 범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백강 이경여 선생이 자손들에게 남긴 가훈(家訓)의 한 대목으로, 백강 선생은 비록 기독교는 접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지만 하나님의 일반은총(一般恩寵)을 입고 임금들에게 ‘하늘의 섬기는 도리’를 다할 것을 가장 강조하여 누누이 말씀하시곤 하였다.
2021. 1.26.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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