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德性)을 기르라
“절의(節義)가 푸른 구름을 굽어보고 문장(文章)이 백설곡(白雪曲)보다 높을지라도, 만일 덕성(德性)으로써 단련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혈기(血氣)가 왕성한 사사로운 행실과 재주의 끝이 되고 마느니라.[節義傲靑雲(절의오청운), 문장고백설(文章高白雪). 若不以德性陶鎔之(약불이덕성도용지), 縱爲血氣之私(종위혈기지사), 技能之末(기능지말).]”<菜根譚(채근담)>.
여기서 ‘덕(德)’이란 인륜과 ‘도의(道義)에 부합하고 공정하면서도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을 말한다고 본다.
인간의 고결한 절개(節槪)가 아무리 높은 벼슬자리도 대단치 않게 여기고, 탁월한 문장이 옛날 백설곡<文選(문선)에 기록된 뛰어난 시>보다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덕성(德性, 공정하고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으로 수양(修養)된 것이 아니면, 절개라는 것도 혈기에 날뛰는 사행(私行)일 뿐이요, 문장도 또한 보잘 것 없는 재주의 일단(一端)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만사를 대함에 있어 덕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전부터 사람들은 덕성(德性)을 기르는 일에 공부의 중점을 두었으며, 그 기본적인 방편으로 마음을 맑고 바르게 바루고 수양하는 것을 삼았다.
그러나 본심(本心)의 착함은 그 체(體)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慾)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진다. 그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스러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利慾)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는가.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덕성이 자신의 몸에 배어 어느 때든지 자연스럽게 들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참조: 백강 이경여 선생, 1653년 효종 4년 7월 2일 상차문(上箚文)>.
생각건대, 우리가 덕성을 기르고 몸에 배도록 하는 삶의 자세에 대하여 ‘시편(Psalms)’ 에서 말하는 다음의 방도가 가장 간명하면서도 본질을 꿰뚫고 있어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편 1-3절).”
우리가 덕성을 기르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일로 귀결된다.
2025. 9.18.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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