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노동은 축복이다

Abigail Abigail 2025. 9. 10. 22:37

노동은 축복이다

 

전 동아건설그룹 회장 최원석씨는 회사가 부도로 넘어간 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출근할 곳이 있다면 부러운 일입니다. 저는 출근할 곳이 없으니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습니다.(2001.7.2.자 조선일보에서)” 라고 하였다. 노동도 행복이 됨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동물에게는 생존을 위한 노동은 있지마는 의미를 갖게 하는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동은 의미를 갖고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성경 말씀에서의 노동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첫째로 노동은 형벌(刑罰)이 아니다. 인간이 범죄(犯罪)하여 타락하기 이전에도 노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즉 창세기 2장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cultivate) 지키게(keep) 하시고”라고 기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만드시고 그로 하여금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으로, 정확하게는 아담이 경작(耕作)하게 하시었다 노동하게 하시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墮落) 이전에도 노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인간타락이 노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즐거워해야 할 노동이 괴로운 노동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인류역사, 문화 발전에 대한 주요한 기여(寄與) 중 하나는 노동의 신성(神聖)함을 강조해온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는 곳 마다 문화와 사회가 발전하여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둘째로 노동은 하나님의 소명(召命)이다. 성경은 노동하는 자체를 귀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노동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므로 우리의 노동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에 그 진정한 의미가 발견된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노동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기본이라 할 것이고 나아가 일을 잘 해야 되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일을 잘하지 못하면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어렵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기 어렵다. 이렇게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우리의 직업일 개연성(蓋然性)이 아주 높다. 하나님은 신도(信徒)들의 삶에 간섭하시고 또 그들을 섭리(攝理)하시므로 그들의 직업도 인도 하신다.

 

창세기 2장 15절을 잘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직접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을 직접 아담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일을 맡기셨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소명(召命, calling)이요 우리의 직업(vocation)이다. Vocation이란 단어의 뜻도 본래 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주신 어떤 은총(恩寵)이나 계시(啓示) 같은 것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직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고 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셋째로 노동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설계된 것이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subdue the earth),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ule over)하시니라.”

 

하나님은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고, 땅을 정복하라<개간(開墾)하라>고 하셨다. 즉 땅을 잘 경작하고 개발하고 관리하라고 하시니 이는 분명한 노동행위이며 그러므로 노동은 우리에게 주신 자녀와 같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생계를 꾸리고 질적인 삶을 누리기도 하므로 축복이 되지만 기독교의 노동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의 결과로 나 뿐만이 아니라 이웃 까지도 복되게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는 “빈궁(貧窮)한 자를 구제(救濟)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고 선(善)한 일을 하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제하기 위하여도 일하여야 하고 또 선교(宣敎)하기 위하여도 일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우리나라에 일찍이 하나님의 은총이나 계시가 있었으므로,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인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올린 상차문(上箚文)에는 임금이라도 열심히 일할 것을 강조하는 아래의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근정(勤政)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위사(衛士)에게 음식을 먹이라 명하거나 날마다 입계(入啓)한 문서의 일정한 양을 스스로 재결하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운행은 씩씩하여 쉬지 않으니, 이를 몸 받는 자가 조금이라도 간단(間斷)이 있으면 만화(萬化)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나라 문왕(周 文王)이 해가 중천에서 기울 때까지 밥 먹을 겨를이 없었고, 상나라 탕왕(商湯)이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린 것이 어찌 일할 것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조무(趙武)가 진(晋)나라의 경(卿)이었을 때에 일영(日影)을 보며 탐하니, 군자(君子)는 그가 마침내 잘 끝내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1) 더구나 존귀한 임금이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장엄하고 경건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安逸)하고 방자(放恣)하면 날로 투박해진다.’ 하였습니다.”

 

[주(註) 1]조무(趙武)가 진(晋)나라의 경(卿)이었을 때에 일영(日影)을 보며 탐하니, 군자(君子)는 그가 마침내 잘 끝내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 조무는 일명 조맹(趙孟), 진(秦)나라의 후자(后子) 침(鍼)이 조맹과 함께 진 나라 임금의 무도(無道)함을 이야기할 때에 진나라 임금은 일찍 죽되 5 년은 갈 것이라 하니, 조맹이 일영(日影)을 보며 “아침저녁이 서로 달라지는데 누가 능히 5 년을 기다리겠는가.” 하였는데, 후자가 나가서 남에게 말하기를 “조맹이 곧 죽을 것이다. 백성을 맡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한 해를 탐하고 하루를 탐하니, 더불어 얼마나 가겠는가.” 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원년(元年).

 

2025. 9.11.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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