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기강(紀綱)이 무너지면
나라의 기강(紀綱) 펼쳐지지 않으니 / 王綱不張
하늘을 속일 수 있다 말하고 / 謂天可欺兮
참소(讒訴)해도 상관없다 하누나 / 謂讒無傷
위는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지은 ‘최 감사 중태 애사(崔監司 重泰 哀辭)’의 한 대목으로 1712년 숙종 38년 당시의 나라의 기강(紀綱)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상태로 십 년이 채 못 되어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탐욕의 무리들의 저지른 무고(誣告)로 인하여 수백 명의 선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참화(慘禍)가 일어났고, 한포재 이건명 선생 역시 참화를 입어 노론사대신의 한분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하늘은 결코 무심치 않아 이들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 영조대왕이 등극하게 되고 이후 모든 일이 밝혀지면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선비들이 신원(伸寃)되고 복권(復權)되었으나 그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영조대왕·정조대왕의 나라의 새로운 부흥시대를 열어 제친 것이었다.
이렇게 유례없이 참혹했던 신임사화는 나라가 잘 유지되려면 반드시 평소에 기강이 잡혀있어야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기강은 과연 어떤 상태에 있는가? 이런 참담한 상태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백강 이경여 선생이 인조임금에게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규모(規模)를 정하고 기강(紀綱)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인주(人主)의 한 마음으로 주장을 삼아, 안으로 남이 알지 못하는 지극히 은미한 곳으로부터 계구(戒懼 경계하고 두려워함)하고 근독(謹獨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일)하기를 더욱 엄격히 하고 더욱 긴밀히 하여 인욕(人欲)은 물러가고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도록 한 뒤에야 이 두 가지 일이 근본으로 한 바가 있어서 정립(定立)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백강 이경여 선생 ‘신도비명(神道碑銘)’ 중에서>.
이 말씀은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이치를 밝히며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인데, 역으로 국민들이 사욕(私慾)을 앞세우고 인륜도의(人倫道義)를 저버리고 스스로 기강이 무너지면 그 나라는 쇠락하고 망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아울러 백강 선생은 이를 위해 나라에 은밀한 소굴을 완전히 두드려 부술 것을 주문하였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기강(紀綱)을 정돈(整頓)하고 중외(中外)를 엄숙하게 하여야 하는데, 일월(日月) 같은 전하의 조찰(照察)은 무엇보다도 먼저 지극히 가까운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위로 액정(掖庭)에서부터 아래로 이서(吏胥)에 이르기까지 은밀한 소굴을 완전히 두드려 부수고 안팎의 세력을 엄히 단절시키는 이것이 근본입니다. 만일 일마다 땜질을 하여 동쪽의 것을 가져다 서쪽을 막고 서쪽의 것을 가져다 동쪽을 보강한다면, 하나는 구제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둘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했다가 만에 하나라도 조처가 잘못되어 폐해가 경시(京市)로 옮겨간다면 이는 작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효종 4년 (1653년) 2월 13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에서>.

2025. 9.1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