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불기(君子不器) 대도불기(大道不器)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였다.[子曰(자왈) 君子(군자) 不器(불기).]』<논어(論語) 위정(爲政) 12장>.
여기서 ‘불기(不器)’란 단순한 그릇처럼 한 가지 용도로 쓰이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여기서 그릇이라고 말한 ‘군자(君子)’는 여러 가지로 쓰이는 사람으로 ‘학식과 유연한 사고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사회적 위상보다는 도덕적 품성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한편, 군자불기(君子不器)는 『예기(禮記)』14.「학기(學記)」에 따르면 곧 ‘대도불기(大道不器)’가 된다. 큰 도(道)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소소한 지식(小知)’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회통(會通)과 통섭(通涉)의 사유(思惟)인데, 이것이 군자의 앎이자 실천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뒤이어 말하기를 ‘군자 주이불비(君子 周而不比)’, 즉 ‘군자는 원만하지만 편당(偏黨)을 짓지는 않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편당(偏黨)을 짓지 않는데 반해, 소인은 편당을 짓고 공평하게 대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子曰(자왈) 君子(군자) 周而不比(주이불비) 小人(소인) 比而不周(비이불주).]』<논어(論語) 위정(爲政) 14장>.
여기서 ‘주(周)’는 도의(道義)를 통해 사람을 모으는 것으로 뒤에 나오는 ‘비(比)’와 상대적인 개념이다. ‘비(比)’는 편당이고 작은 집단이며 작은 종파다. 무리와 큰 뜻으로 화합하되 사사로이 편당을 만들지는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존재가 공자가 말하는 군자인 것이다.
생각건대, 사람은 많이 배우고 견문을 넓혀야 욕망을 합리화하는 자기 안의 작은 그릇을 없앨 수 있으며, 또한 지나친 격식(格式)이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그릇이 크고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릇이 아무리 크다 한들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틀을 부수며 사사로이 편협 되지 않고 두루 섭렵하는 융통성과 포용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이런 공자의 말을 이루려면 우리는 인류역사상 유일한 참된 도(道)로서 ‘하늘의 도(道)’를 찾아 나서고 그리고 이를 실천해가야 하리라. 그리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도(道)’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인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와 어른들을 공경하고 이웃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그 핵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이치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큰 계명으로 말했으니 우리가 이 두 계명을 이행하다보면 공자의 말은 절로 이루어 질 것이다. “첫째는 이것이니 들으라 주(主)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主)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계명(誡命)이 없느니라(마가복음 12장 29-31절)”.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백 년 전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이런 이치를 깨닫고 임금에게 ‘하늘의 섬기는 도리(道理)’를 강조하여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다는 것이다.
“하늘은 이치(理致)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옛적의 제왕이 매우 조심하며 상제(上帝)를 대한 듯 행동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天命)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誠意)를 쌓는 것과 같이 하소서.<조선왕조실록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
2025. 6.27.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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