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여움을 다스리고 위엄과 형벌로 억제하지 말아야 ~ 백강 이경여 선생
성상은 자질이 청명하시어 늘 하늘의 법칙을 따르시지만, 유독 노여움을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착실하게 깊이 공부를 하려 하지 않으셔서, 말씀하시는 기색과 행동하시는 즈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사로운 마음으로 치우침을 면치 못하시고 단지 당파를 비호하지나 않나 의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강을 떨쳐 정숙하게 하고자 하시지만 문란함이 더욱더 심해지고, 피차를 공평하게 하고자 하시지만 사사로운 뜻이 먼저 드러나는 것입니다. 변통이 없는 꽉 막힌 고집스런 생각으로 의심과 믿음이 서로 교차되어 마치 물이 흘러갈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불이 더욱 치성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이치대로 따라 사람들이 저절로 돌아와 복종하며, 마음을 무심한 경지에 두고 사물이 오면 순순히 그에 응해, 형벌과 상의 쓰임을 각각 마땅하게 하고 옳고 그름의 귀결이 각기 바름을 얻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위엄과 형벌로써 한 세상을 억제하고자 도모하신다면 그 해로움이 어진 이와 사악한 이가 섞여 조정에 나아가 손과 발을 둘 바가 없을 정도에 그칠 뿐이 아닐 것이니, 인심을 수습하여 왕업을 잘 이어나가는 도리가 아닐 듯합니다.
<1650년 효종1년 10월29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상차문(上箚文)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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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1년 경인(1650) 10월 29일(기유) 이경여가 유계의 일로 죄를 입은 신하를 너그럽게 용서하라는 뜻을 상차하다
영의정 이경여가 상차하기를,
“유계 한 사람이 조정의 화의 발단을 만들어 조정의 신하들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하고 성덕에 누를 끼치게 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끝내는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성인의 천지와 같은 도량으로 능히 한 미미한 신하를 용납하지 못하고 노여움을 품고 풀지 못함으로써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문득 촉발되며, 아울러 임금을 사랑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는 신하에 【조석윤을 가리킨다.】 대해서 도리어 당을 비호하여 당파를 구원하려 하는 말이라고 의심하시니, 임금의 사심 없이 텅 빈 마음으로 비추고 공평하게 저울질하는 경지에 혹 미세한 티끌이 가리고 약간의 오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신이 또한 망령된 소견으로 헤아려 보건대, 선조(先朝)에게 인(仁)으로 시호를 올린 것에 대해 어찌 단지 대신ㆍ관각ㆍ재상ㆍ근신들만이 모두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겠습니까. 뭇 신료들과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이의가 없었습니다. 휘호를 받들어 올리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으니, 이는 실로 한 시대 공공의 의론으로서 영원토록 천하 만세에 전해지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미미한 신하의 착오로 인하여 왕언을 여러 차례 내리시고 큰 벌이 그때마다 더해져, 아무 실정 없이 망령되게 한 일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손상시키려 했다는 쪽으로 억지로 귀결시키려 하시니, 사책(史冊)에 기록되어 백세 뒤에 전해졌을 적에 혹 당시에 참으로 이론을 제기하는 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도리어 전 시대의 공렬을 빛나게 하여 뒷시대에 전해주는 도리에 손상됨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또한 금오(金吾)의 장관을 한밤중에 옥에 가두고, 특명으로 전관(銓官)을 추고하여 함사(緘辭)를 받도록 재촉하시니, 거조가 평상시와 달라 보고 듣는 이들이 모두 놀라워합니다. 임금이 신하를 대우하는 데에도 반드시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옛날 일에서 찾아보건대 이것이 과연 치세(治世)의 일입니까.
삼가 살펴보건대, 성상은 자질이 청명하시어 늘 하늘의 법칙을 따르시지만, 유독 노여움을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착실하게 깊이 공부를 하려 하지 않으셔서, 말씀하시는 기색과 행동하시는 즈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사로운 마음으로 치우침을 면치 못하시고 단지 당파를 비호하지나 않나 의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강을 떨쳐 정숙하게 하고자 하시지만 문란함이 더욱더 심해지고, 피차를 공평하게 하고자 하시지만 사사로운 뜻이 먼저 드러나는 것입니다. 변통이 없는 꽉 막힌 고집스런 생각으로 의심과 믿음이 서로 교차되어 마치 물이 흘러갈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불이 더욱 치성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이치대로 따라 사람들이 저절로 돌아와 복종하며, 마음을 무심한 경지에 두고 사물이 오면 순순히 그에 응해, 형벌과 상의 쓰임을 각각 마땅하게 하고 옳고 그름의 귀결이 각기 바름을 얻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위엄과 형벌로써 한 세상을 억제하고자 도모하신다면 그 해로움이 어진이와 사악한 이가 섞여 조정에 나아가 손과 발을 둘 바가 없을 정도에 그칠 뿐이 아닐 것이니, 처음에 인심을 수습하여 왕업을 잘 이어나가는 도리가 아닐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내가 매우 무식하여 가르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유념하지 않겠는가.”하였다.
【원전】조선왕조실록 35 집 456 면【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한국고전번역원 | 최석기 (역) | 1990
○領議政李敬輿上箚曰:
兪棨一人, 爲朝廷禍端, 延及朝臣, 致累聖德, 非一非再, 終至於此。 以聖人天地之量, 不能容一小臣, 畜怒不釋, 觸機輒發, 兼以愛君格非之臣, 【指趙錫胤。】 反疑黨護營比之言, 無乃鑑空衡平之地, 或有所纖塵銖兩之蔽差耶? 臣抑有所妄度者, 先朝以仁爲謚, 豈但大臣、館閣、諸宰、近臣, 咸以爲宜? 以至群僚士庶無有異議。 徽稱旣擧, 擧國咸喜, 此實一代公共之論, 而永爲天下萬世之垂也。 因一小臣做錯, 王言累播, 大罰隨加, 使無情妄作之事, 强歸之於有意貶損之地, 書諸史冊, 以傳於後百世之下, 或有疑其當時, 眞有異論者。 然則反恐有損於光前垂後之道。 且金吾長官, 半夜就獄, 特推銓官, 催捧緘辭, 擧措異常, 瞻聆皆駭。 君之待臣, 亦必有禮, 求之古昔, 此果治世之事乎? 竊觀聖質淸明, 動循天則, 而獨於忿懥上, 不肯深加着根工夫, 辭氣之間, 動作之際, 未免好惡偏係之私, 徒以黨比爲疑。 是以, 紀綱欲其振肅, 而紊亂愈甚; 彼此欲其均平, 而私意先露。 膠固纏繞, 疑信相錯, 若水轉激, 如火益熾。 何不喜怒順理, 人自歸服, 付之無心, 物來順應, 使刑賞之用, 各適其宜, 是非之歸, 各得其正也? 欲以威刑, 圖制一世, 其害不止於賢邪混進, 手足無措而已, 恐非初服收拾人心, 迓續景命之道也。"
答曰: "予甚無識, 而敎誨至此, 可不體念哉?"
【태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5책 5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56면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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