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성경의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도록 권면하면서 반면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세상적인 탐욕을 버리라는 가르침이 강조되어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월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가치들을 버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가치 즉 하나님이 주신 가르침과 천국의 가치를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보물을 세상이 아닌 천국에 쌓으라는 것이다. 세상에 쌓은 보물은 세월 속에서 썩고 좀먹고 하면서 사라져가게 마련이지만 하늘나라에 쌓은 보물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가르침을 유학(儒學)에서는 이것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으로 설명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서산 진씨(西山眞氏 진덕수(眞德秀))가 말하기를, “인심유위(人心惟危) 이하의 16자는 곧 요ㆍ순ㆍ우(禹)가 전해 준 심법(心法)이요, 만세 성학(聖學)의 근본이다.
무릇 성색(聲色)과 취미(臭味)의 욕심은 이른바 인심이요, 인ㆍ의ㆍ예ㆍ지의 이(理)는 이른바 도심이다. 인심이 발하는 것은 날카로운 창날이나 사나운 말과 같아서 쉽게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위태롭다 한 것이다. 도심이 발하는 것은 불이 처음으로 타오르거나 샘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아서 쉽게 채우고 넓히지 못하는 점이 있다. 그러므로 미묘하다고 한 것이다.
오직 평소에 씩씩하고 공경스러운 것으로써 스스로를 견지하여, 한 생각이 따라 일어나는 바를 살펴서, 그 성색(聲色)과 취미(臭味)를 위하여 발한 것이라면, 곧 힘쓰고 잘 다스려서 불어나고 자라나지 못하게 해야 하며, 그 인ㆍ의ㆍ예ㆍ지를 위하여 발한 것이라면 곧 한결같은 의지로 지켜서 변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개 이렇게 하면, 이(理)ㆍ의(義)는 항상 간직되고 물욕이 물러날 것이니, 이것으로써 만 가지 변화에 응대(應對)하면 무엇을 하든 중(中)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주자가 만년(晩年)의 정론(定論)에서 인심을 사람의 욕심으로 삼지 않았으니, 대개 인심은 다만 형기(形氣)에서 난 것이라, 성인이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심이 주재가 되어 도심의 명을 따르지 않은 뒤에야 비로소 인욕(人欲)이 되는 것이다. (율곡 이이(李珥), ‘성학집요(聖學輯要)’ 중에서)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유학에서의 가르침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속적인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진리)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서 참된 복과 영생을 누리도록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유학의 가르침도 결국 하나님의 일반은총(一般恩寵)안에서 발전하여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너무 좁은 시각에 국한되어 이단(異端)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유학을 깊이 공부한 분들도 성경을 배척만할 것이 아니고 그 근본에서는 상통하는 부분이 크게 존재함을 알고 더 깊이 공부하기를 바란다.
2020. 9.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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