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樂)과 우(憂)를 넘어서려면
즐거움(樂)과 근심(憂)에 관하여 채근담(菜根譚) 前集에는 다음의 글이 있다.
인지명위위업(人知名位爲業),부지무명무위지락(不知無名無位之樂), 위최진(爲最眞)
인지기한위우(人知饑寒爲憂),부지부기불한지우(不知不饑不寒之憂), 위경심(爲更甚)
사람들이 명예와 지위가 즐거움인 줄은 알면서, 이름 없고 지위 없는 즐거움이 가장 참된 것인 줄을 모르고 있다. 출세도 명예도 없는 사람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즐거움이 참된 낙이 되는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춥고 배고픔이 근심인 줄을 알면서도, 즉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의 이를 위한 근심 걱정이 더 크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그 어떤 명예도 원치 않고, 분수에 맞도록 살며, 지나친 걱정을 해서 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의 여러 일들을 격어 볼만큼 격어 보니, 이는 타당하고 좋은 말씀이라 여겨져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본다.
어딘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이러한 즐거움(樂)과 근심(憂)에 임하여 어떤 태도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의 소견으로는 세상의 ‘樂’과 ‘憂’보다 높고 심원한 가치인 진리를 찾아 실천해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면 진정한 삶의 기쁨과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憂’도 ‘憂’가 아닌 더 깊은 ‘樂’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이며 진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이 강조하는 바처럼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희망‘이 없이는 살기가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 즉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고 하였다.
사람은 인생의 소망, 비전(vision)을 발견하고 매진하고 성취하여 갈 때 참 즐거움, 기쁨을 맛보게 되며, 다가오는 어려운 여건도 근심하기보다는 새 희망의 전주곡쯤으로 해석하여 이들을 극복하여갈 수가 있는 것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큰아들 이민장 선생에게 군자(君子)가 될 것을 삶의 목표, 소망으로 삼으라고 하며 이르기를,
“사람은 군자(君子)의 행동을 본받은 뒤에야 가위 사람이라 할 것이요 아들은 아들의 도리를 다한 뒤에야 가위 아들이라 할 것이다. 네 나이 열다섯이 지났는데도 학문(學文)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아비의 가르침이 부족한 탓이니 너 역시 후회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느냐? 지난 일은 말할 필요 없고 앞으로 오히려 따라갈 수 있으니 너는 지금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고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중 략~ 행동을 바르게 하고 ~중 략~ 말은 적게 하며 예모(禮貌)는 반드시 공손해야 할 것이며 어버이를 섬기는 데는 반드시 그 정성을 다해야할 것이며 어른을 섬기는 데는 반드시 그 공경을 다해야 할 것이며 부인을 대할 때는 반드시 예(禮)로 대하고 실없는 행동을 보이지 말 것이며 아우를 사랑하기를 우애(友愛)로서 하고 다투지 말 것이며 일가 간에 돈독(敦篤), 화목(和睦)하되 내외(內外)를 잘 할 것이며 재물(財物)보다 의리(義理)를 좋아하고 남의 어려운 것을 잘 헤아리고 글을 읽으면 반드시 그 뜻을 궁구(窮究)하고 글자마다 강구(講究)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꾸준히 이 계훈(戒訓)을 힘써 나아가면, 비록 옛 군자(君子)만은 못하여도 혹여 나쁜 일을 하지는 아나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노력해 가야할 것이다. 선(善)한 생각이 비록 낫다가도 의지(意志)가 굳지 못하면 마침내 이루게 되지 못하니 정신을 가다듬고 뜻의 기개(氣槪)를 정립(定立)하여, 이 훈계를 저버리지 말라. 이것이 늙은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이며 그 성패(成敗)는 너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다. 원컨대 너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기운을 내어 일어서서 우뚝 서고 깊이 반성(反省)하고 용감(勇敢)하게 나가서 전에 버릇을 일신(一新)하여 버리고 용렬(庸劣)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내가 편히 눈을 감을 것이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성경(Bible)이 말하는 바는,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있으므로 이를 알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신자들에게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예수교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발견하는 자기 인생의 소명을 향해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 삼십 년 후의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그때의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해보아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은 무엇이고, 그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은 육체의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게 아니라 꿈을 상실할 때 늙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갈렙은 85세의 노장으로서 가나안에서 가장 고산 지대인 헤브론에 도전하여 함락시켰다.
나침판이 없던 시절 고대의 선원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했다. 특히 북극성이라는 변하지 않는 포인트를 좌표로 삼았다. 소명을 갖고 산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북극성 같은 목표와 좌표를 가진다는 것이다.
소명을 향한 미래를 설계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격려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여호수아 1장 5절).
소명과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다 지쳐서 흔들리는 자에게 말한다.
“오직 나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장 31절)”.
이것은 세상의 ‘樂’과 ‘憂’를 뛰어넘는 높은 경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으로, 이들에게는 세상의 ‘憂’도 더 크고 심원한 ‘樂’으로 변하게 되리라!
2019. 4. 2.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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