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선(善)한 사람의 선(善)은 취하여 따르고, 불선(不善)한 사람의 악(惡)은 거울로 삼아 내 허물을 고칠 일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글이야 내가 남들과 같지 않겠는가. 그러나 군자의 도(道)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면 내가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다.” 라고 하였다.[子曰자왈三人行삼인행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 子曰자왈文莫吾猶人也문막오유인야躬行君子궁행군자則吾未之有得즉오미지유득.]』<논어(論語) 술이(述而) 21장, 32장>.
누구나 성현(聖賢)의 글을 읽어 그들의 생각과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배운 인륜도의(人倫道義)를 실천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 제대로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에 흔히 보이는 알기만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알기만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끝이 얼마나 허망하고 치욕스러우며 하늘의 저주를 받게 되어 오히려 알지조차 못한 것만도 못함을 알 수가 있다. 모르고 저지른 악행은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알면서도 저지른 악행은 용서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이 배우려고 하기 이전에 이미 배운 바를 잘 실천하는 데에 힘을 써야한다. 이것이 참된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방도이다. 또한 우리가 이미 배운 바를 잘 실천하는 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면 실천에 실천을 거듭하면서 점차 더 큰 깨달음과 지혜의 경지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즉 법구경(法句經)에서 실천을 강조하고 경계하여 말하기를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 알아도 행하여 지키지 않고 방탕한 사람은 남의 소를 세고 있는 목자(牧者)와 같이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雖誦習多義 放逸不從正 如牧數他牛 難獲沙門果(수송습다의 방일불종정 여목수타우 난획사문과.]”라고 하였다.
한편 실천의 중요성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보고 입으로는 '주님, 주님' 하면서도 어째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천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과 같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흙탕물이 그 집에 세차게 부딪쳐도 튼튼하게 잘 지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 땅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밀어닥치면 그런 집은 곧 무너져 크게 파괴되고 만다.(누가복음 6장 46-49절)”라고 하였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단호하게 실천할 것을 강조하여 말하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 21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소홀한 것이 있으니 즉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 후의 삶에서 실천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야고보서’에서는 그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4-26절).
2025. 9.27.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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