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교훈 : 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粧刀銘)
“시간은 빨리 가고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다.”<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粧刀銘)>
백강 이경여 선생은 세종대왕 7대손으로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다. 효종 때 영의정으로 배청파의 기수가 됐다. 병자호란 후 민생의 안녕을 도모하고 훈련대장 이완 등을 기용해 북벌을 계획했으나 청나라의 압력으로 영의정에서 물러났다. 우의정 때 청나라에 의해 심양에 구금됐다가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했으며 소현세자빈 강씨의 사사(賜死)를 극력 반대하다가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문집에는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백강 선생은 전라도 관찰사 임무를 마친 1634년에 임금께 글을 올린 뒤 2년 동안 부여 백마강변 운한대(현 부산사원 자리)에 머문다. 이 때 쉰이 된 아들은 칠순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한다.
정무로 인해 뜸했던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그는 가장으로서 가정교육에도 힘을 쓴다. 아들들과 조카들을 수시로 불러 훈육했다. 그의 가문이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싹이 트는 씨앗을 뿌린 시기였다. 이 같은 훈육은 3대 연속 문형(文衡)을 비롯해 6명의 정승과 9명의 판서를 비롯해 수십 명의 당상관이 나오는 토양분이 되었다.
이 때 아들들과 조카들이 지표로 삼을 수 있도록 쓴 글이 ‘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粧刀銘)’에 새겨져 있다. 그는 사람으로서 경계하고 행해야 할 내용을 자녀들을 위해 수시로 글을 지었다. 그 일부를 1659년에 후손이 집안에 길이 남기기 위해 백강 선생이 소지했던 작은 칼에 적어 넣은 것이 ‘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粧刀銘)’이다.
백강 선생은 50년 삶을 되돌아볼 때 시간을 헛되이 보낸 아쉬움이 많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 자녀들의 정진을 요구했다. 그는 ‘시간은 빨리 가고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다. 아! 슬프다. 나는 50평생을 헛되이 보내고 빈곤한 마음으로 사는 것을 한탄하고 있으니 무슨 소용이랴. 오직 너희들에게 늙은 아비가 경계하는 것이다’라며 ‘구용구사(九容九思)’를 생활신조로 삼도록 당부했다. 백강 선생은 12가지 지침을 아들들과 조카들에게 내렸다. 12가지는 크게 효, 처세, 독서에 관한 것 인데, 이 12가지 내용이 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粧刀銘)에 새겨져 있다.
1. 어버이에게 문안부터 하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잠을 깬 뒤 동틀 무렵에 세수를 한다. 이어 머리를 빗고 의관을 정제한 뒤 어버이 방에 가 문안을 올린다. 어버이에게 깔끔한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자녀의 반듯한 모습에 어버이가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버이를 공경하고 형을 잘 따르고 집안과 친족에게 극진히 해야 한다.
2. 마음을 가다듬어라
어버이 문안을 마치면 자기 방으로 가 이부자리를 개고 책상을 정돈하는 게 순서다. 방안을 정리한 후에는 단정히 앉아 명상을 한다. 명상을 통해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집중하는 힘을 얻도록 한다.
3. 외우고 깊이 생각하라
배운 것을 외운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서 외우고 깊이 생각해 참 뜻을 알아낸다. 글의 음과 뜻을 자세히 분석하고 파고들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다. 조급한 성취심리에 취하지 말고 차분하게 하라.
4. 몸을 낮추고 배움을 행동으로 옮겨라
학문을 열심히 해 공자, 맹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살 것이며 후진을 그렇게 양성하라. 행동과 마음이 다 공경함으로 일치해야 하다. 몸을 낮춰서 기쁨으로 행할 것이다.
5. 사리사욕을 경계하라
은밀한 곳에서 혼자 있을 때 사사로운 잡념이 싹트지 않도록 마음을 정제하고 노여운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여유롭고 관대한 마음을 갖는다. 사사로운 욕심, 탐욕을 멀리하라.
6. 행동은 신중히 하라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공손하고 정성을 다하며 행동은 신중히 하라.
7. 질문을 하라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라. 나의 단점을 고치고, 남의 장점을 본받아라. 그러면 착한 사람, 덕(德)을 쌓은 사람이 될 수 있다.
8. 적게 먹어라
음식을 적게 먹고 의복을 깔끔하게 입어야 몸과 마음의 질병에서 멀어진다. 이로써 정신과 기운을 기를 수 있다.
9. 사치와 화려함을 멀리하라
사치와 화려함은 모든 만악(萬惡)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값진 장식품도 좋은 뜻을 손상시킬 수 있으니 멀리하라.
10. 미색(美色)을 멀리하라
음란한 소리와 어여쁜 여인은 마음을 버리기에 가장 쉬운 유혹이다. 이런 생각은 문과 벽으로 막듯이 하고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
11.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
마음을 정갈히 하는 데는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세 차례는 필히 나의 행동을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12. 이로움이 아니라 의로움을 따르라
세상사는 의(義)로운 게 있고, 나에게 이(利)로운 게 있다. 그러나 의로움과 이로움은 다른 것이니 잘 살펴서 의로움을 앞세워야 한다. 나를 위하거나 남을 위할 때도 참됨과 거짓이 있으니 그 구분을 명확히 해서 참되게 살아야 한다.
이상의 백강 선생의 삶의 교훈이 이미 사백 년 전의 말씀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면이 있으나, 누구나 인간다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살펴보고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 주(註) : 구용구사(九容九思)
이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구사(九思)와 구용(九容)으로 표현한 것이다. 출처는 "예기(禮記)"로 율곡 이이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 인용되었고, 백강 이경여 선생은 후손들에 대한 가훈(家訓)에서 언급하였다.
구사(九思)-예(禮)를 실천하는 아홉 가지의 생각
1)시사명(視思明) : 눈으로 볼 때는 밝게, 바르고 옳게 보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청사총(聽思聰) : 들을 때 편견 없이 바르게 듣는다.
3)색사온(色思溫) : 표정은 늘 온화하게 한다.
4)모사공(貌思恭) : 몸가짐이나 옷차림은 항상 단정히 한다.
5)언사충(言思忠) : 말을 할 때는 항상 믿음이 있는 말을 하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한다.
6)사사경(社思敬) : 어른을 섬김에 있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긴다.
7)의사문(疑思問) : 의심나는 내용이 있으면 물어서 깨달아야 한다.
8)분사난(忿思難) :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삭여 나타내지 않는 것이 좋다.
9)견득사의(見得思義) : 항상 재물을 얻게 될 때 의(義)와 이(利)를 구분하여 취사(取捨)를 가린다. 재물은 정당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명예나 지위는 나에게 합당한 것인가, 지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서 처신한다.
구용(九容)-예(禮)를 실천하는 아홉 가지의 얼굴
1)족용중 (足容重) : 발걸음을 옮길 때는 진중하게 하며, 어른 앞을 지날 때는 민첩하게 행한다.
2)수용공(手容恭) : 손은 늘 공수한 자세로 공손한 자세를 취한다.
3)목용단(目容端) : 눈은 단정하고 곱게 떠서 정면을 바로 보고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
4)구용지(口容止) : 입은 조용히 다물며 해야 할 말만 조용히 하고 신중히 말한다.
5)성용정(聲容靜) : 말소리는 항상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음색으로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6)두용직(頭容直) : 머리를 곧게 하면 몸의 자세도 바르게 된다. 머리가 바르게 되면 눈과 시선도 단정해지고 전체의 자세가 바르게 된다.
7)기용숙(氣容肅) : 기운이란 전체의 기상을 말한다. 호흡을 조절하여 고르게 하면 몸가짐도 엄숙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8)입용덕(立容德) : 서있는 모습이 그윽하고 덕성이 있어야 한다.
9)색용장(色容莊) : 안색을 정제하고 태만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얼굴의 표정은 씩씩하고 명랑하게 한다.
2024.12. 7.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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