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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은 그 마음과 같고 문장은 그 사람과 같다<죽서(竹西) 이민적공(李公敏迪)의 소차(疏箚) 발문(跋文)에서 ~ 명재 윤증 선생

Abigail Abigail 2021. 10. 22. 19:22

모습은 그 마음과 같고 문장은 그 사람과 같다

<죽서(竹西) 이민적공(李公敏迪)의 소차(疏箚) 발문(跋文)에서 ~ 명재 윤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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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유고 제32권 / 발문(跋文)

《죽서소차(竹西疏箚)》 발문 병인년(1686, 숙종12)

 

죽서(竹西)는 도어사(都御使)를 지낸 고 전주 이씨 혜중(惠仲) 이공 민적(李公敏迪)의 호이다. 공은 영의정 백강공(白江公 李敬輿)의 둘째 아들로 백강공의 동생인 여은공(鑢隱公)의 양자가 되었는데, 여은공은 바로 우리 큰고모부이다.

 

여은공은 참으로 뛰어난 재능에다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으나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우리 큰고모는 젊어서 학덕을 갖춘 여성[女士]이라 불릴 정도였기에 고모의 시어머니는 일찍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는 며느리를 가엾게 여겨 매번 위로하기를, “훌륭한 우리 며느리, 덕은 있는데 자식 운이 없으니 하늘이 반드시 훌륭한 자식을 내려 줄 것이다.” 하였는데, 얼마 안 있어 공이 태어났다. 시어머니는 바로 우리 큰고모에게 공을 자식으로 삼도록 명해서 이로 인해 공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공은 우리 큰고모를 섬기는 데에 타고난 성실한 성품을 다하였는바, 아들의 효성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친모자간보다 더하였다. 이에 내외 친척들이 모두 큰고모를 찬미하기를, “이런 자식을 얻으시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였다. 이는 우리 일가(一家)만이 상세히 아는 일이고 바깥사람들은 제대로 다 알지 못하는 일이다.

 

공은 문예 방면에서 일찍 일가를 이루었으나 32세에야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출사가 늦었다고 여겼다.

공은 유생 시절부터 이미 중한 명망이 있었고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청아한 명망이 온 조정에 가득하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조화와 강직의 양면을 지닌 데다 의론이 준절하여 효종과 현종 두 조정에서 실제로 사류들의 종주(宗主)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임금을 보좌할 중신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겨우 49세에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조정과 재야가 모두 공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 13년 뒤에 공의 맏아들 이사명(李師命)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공의 소차(疏箚) 2권을 모아 판각하여 새로 간행한 책을 나에게 보내 주었는데, 공이 벼슬길에 오른 이래로 의견을 제시했던 것을 이 책에서 대략 볼 수 있었다. 관찰사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해 주기를 부탁하였으나 글재주가 없는 내가 어찌 감히 우매하고 비루한 소견으로 외람되이 논술하겠는가. 다만 내가 삼가 공이 공정하게 마음 쓰는 것을 사모하여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던 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

 

공은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옥같이 맑고 금같이 정(精)한 기운에 단정한 용모가 사람들에게 비치어 공을 좋아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었다. 공을 대하면 마치 지초(芝草)나 난초처럼 그 향기가 사람에게 배어드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세도가나 이익 앞에서도 태연하고 물욕이 없이 담백하여 명사(名士)가 되었고 20년 동안 지낸 관직이 모두 청요직(淸要職)에 화현직(華顯職)이면서도 단지 유생 시절처럼 자신을 다스리고 결코 자리를 의식하는 마음이 없었다. 관직에 있는 동안 서울에 몇 칸짜리 작은 집 한 채 가진 적 없고 들에 농토 한 평 더 늘린 적 없었으며, 심지어는 아침 끼니를 거르는 때가 있어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공의 본성 자체가 그러했던 것이지 애당초 의식적으로 청빈(淸貧)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 이 한 가지 절조는 이를 사모하는 자가 아무리 전력투구하여 따라가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일이므로 의당 세속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후세에 길이 전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들의 말에, “모습은 그 마음과 같고 문장은 그 사람과 같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대로 공의 글을 읽어 보면 공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공의 말년은 이미 소인들이 위세를 떨치는 때였고 공이 세상을 떠난 10년 뒤에도 그들이 못하는 짓이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지는 때를 만나 그때까지 줄곧 영락해 있던 사류들이 모두 등용되는 시절이 왔음에도 공은 이미 세상을 떠나 무덤의 나무들만 한 아름 자라 있을 뿐이었다. 세도가 비색하거나 흥성하는 때를 만나면 사람들은 그때마다 지하에 있는 공을 생각하는바, 선대 조정의 훌륭한 인재를 꼽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다 수긍하는 사람은 오직 공 한 사람뿐이다. 아아, 하늘이 어찌 공에게 재능과 학덕을 주었으면서 아울러 수명과 지위까지 주지 않아 결국 크게 포부를 펼칠 수 없게 만들어 고작 전해지는 것이 이 정도에서 그치게 하였단 말인가. 이것이 어찌 단지 공이 복이 없는 데에서 그치는 문제이겠는가. 이에 크게 탄식하며 책의 끝에 쓰는 바이다.

 

[주-D001] 이공 민적(李公敏迪) :

1625~1673. 인조ㆍ효종 연간의 문신으로, 자는 혜중(惠仲)이며 윤문거(尹文擧)의 문인이다.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작은 아버지 이정여(李正輿)에게 사후(死後)에 입양되었고 양모는 윤황(尹煌)의 큰딸이다. 현종(顯宗)이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아껴 가까이하였으며, 그가 올린 소차(疏箚)들은 명문으로 꼽힌다. 저서로 《죽서집(竹西集)》이 있다.

[주-D002] 백강공(白江公) :

이경여(李敬輿, 1585~1657)로, 백강은 그의 호이다. 또 다른 호로 봉암(鳳巖)이 있고 자는 직부(直夫)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효종 때에 영의정에 올랐고 시문과 글씨에 능하였다. 저서로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주-D003] 여은공(鑢隱公) :

이정여(李正輿)로, 여은은 그의 호이고 자는 명부(明夫)이다.

[주-D004] 32세에야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므로 :

이민적은 1656년(효종7) 병신년 별시(別試)에서 갑과(甲科) 제1인으로 장원급제하였다.

[주-D005] 이사명(李師命) :

1647~1689. 인조 때부터 숙종 연간의 문신으로 자는 백길(伯吉)이고 호는 포암(蒲菴)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들었고 뛰어난 시재(詩才)로 김창흡(金昌翕)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당쟁에 깊숙이 관여한 관계로 유배지에서 최후를 마쳤다.

[주-D006] 하늘의 …… 만나 :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졌다는 것은, 1680년(숙종6)에 남인인 허적(許積) 일파가 실각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경신환국(庚申換局)을 말하는 것인 듯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역) | 2009

 

명재유고 제32권 / 발문(跋文)

竹西疏箚跋 丙寅

竹西者。故都御使完山李公敏迪惠仲之號也。公以白江相國之仲胤。爲相國弟罏隱公後。罏隱公。我伯姑夫也。寔有高才令質。不幸早世。我伯姑少稱女士。姑夫人憐其早寡無子。每撫以慰之曰。賢婦有德無命。天必以令子賜之矣。未幾而公生焉。姑夫人卽命我伯姑子之。以此公自幼長於吾家。公事我伯姑。至性出天。子孝母慈。殆踰於所生。中表莫不爲伯姑稱美之曰。幸哉得子。如此哉。此則吾一家之所詳。而外a136_170a人或未之盡知也。公文藝早成。三十二擢魁科。人以爲晩也。自在布衣。已有重名。及釋褐。雅望傾朝。從容和毅。論議侃侃。孝,顯兩朝。實爲士類宗主。世以公輔期之。及卒壽僅四十有九。朝野爲之痛惜焉。後十有三年。公之伯子師命。爲湖南按使。裒公疏箚二卷。入梓以新帙寄示。蓋公立朝以來。發於言議者。可以略見於此。按使屬余以一言。余不文。何敢以昧陋之見。有所僭論。唯嘗竊慕用公。而識於中心者。則有之矣。公天資粹美。玉潤金精。淸標映人。可愛可敬。對之如芝蘭然。自覺其馨香之襲人也。恬於勢利。淡於物慾。身爲名士。二十年所踐歷。盡淸要華顯。而自牧只a136_170b如儒素。絶不以營爲經心。家無數椽於京。田不增一畝於野。甚至朝粲有時而闕。而晏如也。然體任自然。初非有意於淸苦也。噫。只此一節。亦當範俗而垂世人之慕之者。雖欲刻意追之而不可及也。人之言曰。貌如其心。文如其人。信斯言也。其猶可以讀公之文。而知公之心也歟。嗚呼。公之晩節。已當小來之會。公歿後十年之間。靡事不有。及夫天日重明。向來士類之流落者。無不進用。而公則墓木已拱矣。當世道否泰之際。人輒思公於九原。屈指先朝俊彥。計得此於輿論者。唯公一人耳。嗚呼。天胡賦公以才德。而不並畀以年位。使不克大有展布。而其可傳者止此。a136_170c此豈但公之無福而已。遂太息而書于卷末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4

모습은 그 마음과 같고 문장은 그 사람과 같다

<죽서(竹西) 이민적공(李公敏迪)의 소차(疏箚) 발문(跋文)에서 ~ 명재 윤증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