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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가 막히면 망한다

Abigail Abigail 2021. 7. 1. 06:10

언로(言路)가 막히면 망한다

 

“언론이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사상가이자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이 말은 언로(言路)를 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의 헌법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확고하게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즉 언로(言路)를 여는 것이 이처럼 중요함을 아셨던, 우리 선조님들도 언로가 막히는 것에 대한 경계에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특히 세종대왕은 수시로 신하들을 불러 독대(獨對) 하시며 견해를 나누고, 국민투표까지 실시하시는 등 민의(民意)를 수렴하심을 바탕으로 위대한 정치를 이루었다.

 

생각건대 언로를 열어 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윗사람의 태도라고 보여 지는데 이에 대한 선조님들의 말씀들을 들어보자.

 

1653년 효종 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은 다음과 같이 상차(上箚)하였다.

“납간(納諫)이란 뜻을 겸손히 한다는 말인데, 이윤(伊尹)은 ‘뜻에 맞는 말은 도리에 어그러지는지를 살피라.’ 하였고, 장손흘(臧孫紇)은 ‘계손(季孫)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질진(疾疢)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옳다 하는 것을 따라서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 하는 것을 따라서 그르다 한다면,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기쁘더라도 일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약을 먹고 어지러운 것은 병에 이롭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일에 이로우니, 이것이 주사(周舍)가 입바른 말을 하던 일을 조앙(趙鞅)이 사모한 까닭입니다. ~ 포용하는 도량은 참으로 어렵지만 오직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를 수 있고서야 언로(言路)가 소통되는 아름다움을 이룰 것입니다”

[註]질진(疾疢) : 겉보기와 맛은 좋으나 해가 되는 것

 

1655년 효종 6년 5월11일 서하 이민서 선생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臺諫)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657년 효종8년 5월5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간언(諫言)의 수용 등을 청하였다.

“조정에서 옳게 한 일을 백성들이 옳다고 하는 것은 치세(治世)이며, 조정에서 그르게 한 일을 백성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도 치세입니다. 조정이 일을 하고서 스스로 옳다고 하면 백성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이 자사(子思)가 위(衛)나라 임금을 위해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상벌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 대간의 직책은 우리 조종조로부터 예의로써 대우하여 왔습니다. 임금이 먼저 각별한 은혜와 예의로 대우하여 백관들이 모두 그 위세에 눌리므로써 공론(公論)를 주장하고 기강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소나 말을 속박하듯이 자신의 귀와 눈을 못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날은 왕정시대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니 언론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언론의 자유는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소통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점은 먼저 상대방 인격과 견해를 존중할 줄 아는 양식 있는 시민의 풍토를 길러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논어‘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해야 할 것[九思]이 있다 했는데 이중 의사소통과 관계된 것들이 무려 다섯 가지이다. 즉,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聽思聰], 낯빛은 온순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色思溫],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貌思恭],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言思忠], 의문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며[疑思問], 분(忿)해지면 어려워질 일을 생각하며[忿思難]이 그 것들이다.

 

특히 권력자들은 ‘분(忿)해지면 어려워질 일을 생각하라[忿思難]’는 경계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국민의 언론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일을 피해야한다. 언론을 통제 조정하려는 것은 독재로 이어지며 그 결말이 어떠한지는 역사가 이미 말하고 있지 않은가.

 

2021. 7. 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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