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창조적 사회를 이루려면

Abigail Abigail 2020. 8. 2. 11:59

창조적 사회를 이루려면

 

요즈음 우리나라는 “창조적인 경제”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나는 생각하기를 이는 말로 자주 한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나라 구성원 개개인의 사람됨의 성숙이 먼저 이루어 져 가야 할 터인데 하였다.

 

인도의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J Krishnamurti)가 쓴 “자기로 부터의 혁명”이란 책 중에 다음의 글이 있다.

 

“늘 생기 있는 사회를 창조하려면, 개인의 심리 속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내부의 심리적 혁명이 없이는 외부의 혁명도 의미가 없습니다. 내부의 혁명을 수반하지 않은 사회는 반드시 고정화되며 정적인 것이 되어서 그 결과 항상 분해되어 갑니다. 아무리 많은 법률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제정되어도, 사회는 항상 붕괴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혁명은 단순히 외부에서가 아니라 마음의 내부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 사회는 항상 고정화 하려는 경향이 있고 항상 개인을 흡수하려고 한다는 점, 또한 부단한 창조적 혁명은 사회나 외부에서가 아니고 개인의 내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점, 이런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즉 창조적 혁명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간관계에서만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내부가 발전하고 성숙해 가지 않는 한 창조적이고 생기 있는 사회, 창조적인 정치, 창조적인 경제는 말로만 한다고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늘날 모든 면에서 독일이 모범국가로 회자된다. 그런데 독일에는 바흐, 베토벤, 괴테, 쉴러, 칸트, 헤에겔 등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면서 그리고 히틀러 시대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하면서 국민적인 정신문화의 토양이 건전하고 차원 높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 그 근본적인 기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에게도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오늘날도 본받을 만한 탁월한 선조님들이 계시다. 다만 우리 후손들이 그 정신을 잘 계승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맥락에서 국민 초등 교육, 윤리교육, 인간성 계발교육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무너졌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며, 가장 우려 되는 것은 나라의 지도자라는 분들이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식견도 관심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가정이나 나라나 세계나 백년대계는 교육에 특히 구성원의 인격계발의 교육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온유(gentleness)와 겸손 그리고 아가페(agape)의 사랑으로 대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의 계발이 가장 주목된다. 이는 그가 영원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었으며, 지난 이천년간의 검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溫故而知新”의 정신은 공부하는 기본자세로 매우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世宗大王은 이러한 맥락으로 “가전충효 세수인경 [家傳忠孝 世守仁敬, 충성되고 효도하고 어질고 공경하는 가풍(家風)을 대대로 지켜가라]”이라는 家訓을 남기었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자손에게 남긴 家訓 가운데에 이런 점을 강조 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 마음과 성품을 성실히 가져 행동과 마음이 다 공경(恭敬)으로 하고 사리를 분명히 알아서 독실(篤實)하게 믿고 힘써 행하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서라도 조심하여 사사롭고 간사한 생각이 싹 트지 못하게 하여라.

 

분한 생각을 경계하고 욕심을 막고 모든 잡념을 깨끗이 몰아내어 마음을 맑게 하여라.

 

진실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함과 외면(外面)으로 함이 참과 거짓의 분별됨이요, 이익을 바라고 착한 일을 함과 당연히 할 일로 알고함이 의리(義理)와 이욕(利慾)의 다른 길이니, 이를 잘 살펴서 흑백(黑白)을 분별함과 같이 하여 바르게 행하라.

 

집에서는 효(孝)로하고 밖에서는 공경(恭敬)으로 하여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하며 벗에게 친절히 하되 조금도 교만(驕慢)하지 말 것이며, 친족(親族) 간에 화목(和睦)하게 하여 각각 그 정상(情狀)에 따라 극진히 하고 일을 할 때와 사람을 대할 때 반드시 공손(恭遜)하고 성심(誠心)으로 하며, 행동을 반듯이 신중하게 할 것이며 말을 할 때는 반듯이 가리어하고 걸음걸이는 반듯이 할 것이며, 용모를 반듯이 씩씩하게 하며, 과실(過失)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며,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질문하며, 사람의 기질(氣質)에 따라 잘하고 잘못함이 있으니 자기의 잘못 됨을 살펴 용단(勇斷)으로 고치어 끊어 버려라.

 

사치(奢侈)함과 호화로운 것은 여러 가지 악(惡)함의 근본이요, 모든 값진 장식품도 역시 좋은 뜻을 손상(損傷)시키며, 백가지 구경을 좋아하는 함 역시 뜻을 상하게 하는 것이요, 음란(淫亂)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女色)은 가장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이니 굳게 방비(防備)하여 범하지 말라.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 것이며, 하루에 세 번씩 자기의 잘못이 있나 없나 살피보아라 “

 

이렇게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가꾸고 놓아 갈 때에만 진정한 생명력 있는 창조적 사회의 토양은 이루어 질 것이다.

 

2013.10.20.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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