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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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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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 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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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돌아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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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취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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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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