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하고 아첨하는 자
“무릇 임금 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은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1)은 낭관(郎官)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설총(薛聰), ‘화왕계(花王戒)’에서>.
『이른바 납간(納諫)이란 뜻을 겸손히 한다는 말인데, 이윤(伊尹)은 ‘뜻에 맞는 말은 도리에 어그러지는지를 살피라.’ 하였고, 장손흘(臧孫紇)은 ‘계손(季孫)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질진(疾疢)2) 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옳다 하는 것을 따라서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 하는 것을 따라서 그르다 한다면,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기쁘더라도 일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약을 먹고 어지러운 것은 병에 이롭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일에 이로우니, 이것이 주사(周舍)가 입바른 말을 하던 일을 조앙(趙鞅)이 사모한 까닭입니다.
간사한 무리는 흔히 임시변통하는 술수가 넉넉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꾀가 넉넉하나 오직 그 마음먹는 것이 바르지 않으므로 착하려 하지 않고 악하려 하며 충직하려 하지 않고 속이려 합니다. 따라서 참으로 호오를 밝히고 정상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우정(禹鼎)3)에서 이매(魑魅:사람을 홀리는 도깨비)를 가려내고 일월(日月)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겠습니까. ··· 임금은 높고 깊은 데에 있으므로 듣고 싶은 것은 바깥의 말이고, 임금은 위세가 무겁고 크므로 늘 좋아하는 것은 아첨하는 무리이니, 세상을 다스리는 근심에 어찌 단주(丹朱:붉은 빛깔)와 같지 말라는 경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절의(節義)를 위하여 죽을 사람은 싫어하는 낯빛을 무릅쓰고 감히 간언(諫言)하는 사람 가운데에서 찾아야한다.’ 하였으니, 임금이 이것을 알면 얻은 것이 벌써 많은 셈입니다.
무릇 아첨하는 자는 반드시 임금의 의향을 엿보아 뜻을 미리 알아서 받들고, 임금의 마음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을 헤아려 곡진히 헐뜯거나 칭찬하며, 기세(氣勢)가 좋은 자에게는 기어 붙어 결탁하고 정직한 자에게는 겉으로는 칭찬하되 속으로는 배척하는 등 정태(情態)가 은밀하고 계책을 쓰는 것이 여러 가지이니, 받아들일 즈음에 그들의 행동을 살피고 치우치는 내 마음을 끊으면 영예(英睿:영민하고 슬기로움)가 비추는 바에 자취를 숨길 자가 없을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백성에 간사한 무리가 없고 관리가 사욕에 치우친 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하였고, ‘치우침이 없고 기욺이 없으면 표준에 모여 표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는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평탄하며 기울지 않고 넓고 멀어서 사사로운 것을 끼우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1653년 효종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 상차문(上箚文)에서>
[註1: 풍당(馮唐) - 한(漢)나라 안릉(安陵)사람으로,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郎官)에 그쳤음. 낭관(郎官)은 하급관리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
[註2]질진(疾疢) : 겉보기와 맛은 좋으나 해가 되는 것.
[註3]우정(禹鼎) : 우 임금이 구주(九州)의 금을 모아 주조했다는 솥.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교훈과는 달리 분열을 일삼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7-18절).
“뭇 신하의 곡직(曲直)을 알려면 반드시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고 충직한 자를 가까이하며, 강직하고 방정한 말을 좋아하고 순종하고 예쁘게 보이려는 꼴을 미워할 것이며,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면서 맞추는 것을 공손하다고 여기지 말고 직언으로 간하고 물러나기 좋아함을 거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 1652년 효종3년 10월25일 상차문(上箚文) 중에서>. “아첨하는 자는 충성하지 못한다. 간쟁하는 자는 배신하지 않는다”(목민심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다.
정치학자 해럴드 래스키(Harold Joseph Laski)는 ‘건전한 충성은 수동적이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형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것이다.’ 하였다.
2023. 9. 5. 素淡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혜의 길 (1) | 2023.09.09 |
---|---|
하나님은 나의 친구 (0) | 2023.09.08 |
가을 풍취 흐르니 (0) | 2023.09.02 |
학문의 목적과 교육개혁 (1) | 2023.09.01 |
악과의 전투, 훈련과 연단(鍊鍛) (0) | 202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