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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교(禮敎)와 정치(政治)

Abigail Abigail 2023. 6. 13. 04:20

예교(禮敎)와 정치(政治)

 

우리나라 예학(禮學)의 종장(宗匠)으로 불리는 사계 김장생 선생은 사람들을 가르쳐 예절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예교(禮敎)’와,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政治)’를 일원화시킨 바 있다.

 

그는 예(禮)에 대해 강조하기를 예는 의식이나, 절차에 있지 아니하며 오로지 "마음의 정성"에 달려있다고 하였고 또한 예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사계 선생이 일찍이 시골마을에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여쭈어 말하기를 “오늘 집안의 개가 새끼를 낳아 정결치 못하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라고 하니 선생이“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와서 여쭈어 말하기를 “집안에 아이를 낳은 일이 있으나 제삿날을 당하였으니 예를 폐할 수 없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겠습니까”라고 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라”고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앞의 사람은 정성이 없어서 제사를 지내고자 하지 않고, 뒤의 사람은 정성이 있으므로 제사를 지내고자하니 예는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儀式)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정성스러움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현실적인 예의 실천에 관하여 사계 선생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이다. 사계 선생이 생각하기에 예의 본질은 정성스러움에 있었다. 따라서 정성이 없이 단지 흉내만 내는 것은 진정한 예가 아니므로 차라리 예를 갖추지 않는 것 보다 못하다고 보았다.

 

사계 선생이 이처럼 예론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모든 인간이 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을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계 선생은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면 국가가 혼란해진다고 하여, 예를 국가 치란(治亂)의 관건으로 보았다. 즉 김장생의 정치사상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治國)이란 인간사회의 조화를 성취한다는 목표가 가장 우선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을 가르쳐 예절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예교(禮敎)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政治)를 일원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계 선생의 예학(禮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사회의 사회질서와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실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사계 선생은 예의 본질에는 변치 않는 덕목(德目)이 있는 반면,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예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예학의 근본정신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국민이 정성으로 이웃을 배려하여 예(禮)를 지키고 살아가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정치를 이루어 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선조님들이 남대문의 공식명칭을 ‘숭례문(崇禮門)’이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된다.

“나의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다윗)의 하나님(진리)을 바로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기도록 하여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과 의도를 살피신다” (역대상 28장 9절). 진리를 사모하고 정성을 다해 따라 살고자하면 자연히 예를 정성을 다해 배우고 지키게 될 것이다. 예를 정성으로 배우고 지키며 살면 하나님의 살피심과 돌보심으로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바로 잡히며 나아가 내세에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2023. 6.13. 素淡

 

사계 김장생(1548~1631)은 율곡 이이 선생의 적통을 이어받아 조선예학을 정비한 한국 예학의 종장이며, 임진왜란과 호란 이후 조선의 국가정신과 사회발전의 방향을 정립한 주인공이다. <조선왕조실록> 김장생 졸기(卒記)에도 “고금의 예설(禮說)을 취하여 뜻을 찾아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하였다. 일찍이 신의경이 편집한 상제서(喪制書)를 정리하고 절충하여 <상례비요>라고 이름 하였는데, 세상에 유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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