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살아야할 소망이 있다는 것은

Abigail Abigail 2022. 10. 26. 18:14

살아야할 소망이 있다는 것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경영학의 대부(代父) 격인 학자이다. 그는 9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저술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출간하였다. 그가 나이 들어가면서 그런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날에 본 한 편의 오페라 덕분이었다. 그가 사회 초년생이던 때에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 함부르그에서 면제품 수출회사의 견습사원으로 있었을 때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페라를 꼭 관람하는 습성이 있었다.

 

하루는 위대한 작곡가 베르디(Verdi, 1813~1901)의 ‘팔스타프(Falstaff)’를 관람케 되었다. 그는 그 오페라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곡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 드러커는 매우 놀랐다. 그토록 훌륭한 오페라를 만든 사람이 80세의 노인이었던 점에서 놀란 것이다. 그는 베르디의 인터뷰 기사도 읽었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이미 인정받고 있는데, 왜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는가?” 이 질문에 베르디가 답하였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하여 왔다. 그러나 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내게는 한 번 더 도전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드러커는 그날 이후로 베르디의 이 말을 삶의 길잡이로 삼았다. 나이를 먹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래서 95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 연구하고 계속 집필하였다. 80이 넘는 나이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완벽을 추구하였던 베르디처럼 그 역시 언제나 앞으로 나올 책이 보다 나은 책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이루려하며 살았다 (김진홍 목사 2009.7.27.).

 

기독교인의 삶은 하루하루가 그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삶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이루려 하시는 목적을 실현하려는 차원 높은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고로 기독교인은 누구나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한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서 실현해야할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며 이 목적을 이루려는 소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을 힘차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에게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숭고한 이유와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이처럼 살아야할 바람직한 소망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그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의 삶에서 살아가야할 소망을 잃어버리면 그가 아무리 좋은 여건에 놓여 있을 지라고 삶의 의욕을 잃고 살아가거나 때로는 권태에 빠지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변화시켜 가려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건전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있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정신문화의 풍토를 건전하고 진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풍토로 가꾸어 나가야만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날 물질주의 탐욕주의 전체주의적 사상에 빠져 크게 타락한 우리나라의 정신문화의 개혁은 매우 절실하다. 특히 정치인들로부터 넘쳐나는 거짓말들은 반드시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생각건대 세계 선진사회에서 이미 입증된 청교도 정신, 우리민족의 우수성이요 자주성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정신 그리고 기본적 인권을 가장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국민들 모두의 모든 생활 분야에서 철저한 개혁 작업을 수행해 나가야 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이것은 국민 개개인의 삶을 아름답고 보람 있게 가꾸어 나가는 것은 물론 나아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인류역사에 자고로 정신문화가 썩고 타락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모두 머지않아서 멸망하고 말았다.

2020.10.27.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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