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비고 밝은 한조각 마음

Abigail Abigail 2022. 9. 11. 04:29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한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期必)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백강 이경여 선생, 효종 4년(1653년) 7월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생명의 길은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깊은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방도는 자아를 내려놓는 길로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을 추구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평소에 비고 밝은 한조각 마음을 추구하며 그 비움의 공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 나가야하는 것이다.

 

인격수련은 물론 신앙생활도 훈련이다. 그것은 ‘비우고 버리는 훈련’이다. 사람들은 흔히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비우고 버리지를 못한다. 어느 시인이 쓰기를 “열살에 맛있는 과자에, 스무살에 연인에, 서른살에 쾌락에, 마흔살에 야심에, 쉰살에 탐욕에 넘어가지 않을 자 누가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생은 본질적으로 욕심과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본질의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에는 이를 수가 없다.

 

인간은 근본에 있어 ‘소유하는 것(To have)’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To be)’이다. 그 존재도 일시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정희 시인은 ‘하나님 전상서’란 글에서 다음 같이 쓰고 있다.

 

신자보다 잘 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부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저 대지의 주인일 수 있을 때까지 주여 재림하지 마소서.

 

하늘로 부터 임하는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이는 단순 명확한 기술인데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건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식하는 기술로서 내가 받은 것들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려놓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체득(體得)한 사람은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우리의 평생에 걸친 인격수련과 신앙생활의 길은 바로 이 기술을 체득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가 있다.

 

인간은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로 누구나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내 마음을 비우게 하신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가르침과 강점을 찾아내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고로 사도 바울(St. Paul)은 고린도후서 12장 9-10절에서 고백하기를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困苦)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 하였다.

 

내가 나의 탐심(貪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채우려고 노력하며 살아갈 때 약한 나는 어느새 강하고 능력 있게 변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23절>. 나의 빈 마음에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내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나로 하여금 삶의 보람과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22. 9.11.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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