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성을 위한 정치

Abigail Abigail 2018. 5. 10. 13:50

백성을 위한 정치

 

아래의 글 1. 문종임금 즉위년의 사헌부 상소문을 보면 세종대왕께서 보위에 계시는 동안 始終이 如一하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데 가장 優先을 두시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민심이 세종대왕을 사랑하고 떠받듦이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190년 뒤에는 세종대왕의 7대손 백강 이경여 선생과 205년 뒤 대왕의 8대손 서하 이민서 선생이 각각 글 2와 글 3의 상소문에서 동일한 취지로 백성을 사랑함을 으뜸으로 하며 나아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 되어야함을 간곡히 말씀하시었습니다.

지난 왕조시대임에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깊었는데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들의 정치가 이보다 나아 보이지 아니함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서구 민주주의 뿌리가 되는 기독교의 정신도 그 핵심은 참 진리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울러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오늘날 가정이든 회사이든 관공서이든 정치단체든 모든 조직의 리더의 입장에 있는 분들은 아래의 글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 글 1 **************************************************

문종 3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8월 17일(무자)

사헌부에서 언로를 넓히도록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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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上疏)하기를,

“가만히 생각하건대, 예로부터 군주(君主)가 즉위하면 반드시 먼저 조령(條令)을 내려서 실제의 혜택(惠澤)을 신민(臣民)들에게 미치게 한 후에야 민심(民心)의 사랑하고 떠받드는 것이 더욱 깊어져서 나라의 근본이 더욱 튼튼해졌던 것입니다.

우리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도 왕위(王位)를 계승하신 처음에 다른 일에 미칠 겨를이 없었는데도, 맨 먼저 교지(敎旨)를 내리시어 유일(遺逸)670) 을 천거하고, 절의(節義)를 권려(勸勵)하며 직언(直言)을 구하며 민막(民瘼)671) 을 찾아내게 하였으니 모든 시위(施爲)와 제작이 한 시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30년 동안의 치안(治安) 규모가 이미 초년(初年)에 갖추어졌으니, 그런 까닭으로 인심(人心)의 사랑하고 떠받듦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날과 같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 특별히 대신(大臣)들에게 명하여 백성에게 편리한 사의(事宜)를 자세히 잘 연구하여 낱낱이 선포(宣布) 거행하여 민심(民心)을 견고히 하도록 하고, 또 윤명(綸命)을 내려 유일(遺逸)된 선비를 찾아 천거하게 하고, 절의(節義) 있는 사람의 후손을 찾아 녹용(錄用)하여 선비의 기풍(氣風)을 진작(振作)하도록 하고, 또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민(大小臣民)에게 명하여 모두가 글을 올려 국사(國事)에 대해 진술하게 하여, 위로는 성정(聖政)의 실수와 아래로는 민간(民間)의 폐단까지 의견을 충분히 말하여 숨김이 없도록 하게 해서, 말이 비록 사리(事理)에 맞지 않더라도 또한 죄를 가하지 않는다면 언로(言路)672) 가 더욱 넓어지고 민정(民情)이 위에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영인본】 6책 272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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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670]유일(遺逸) : 버림을 받아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

[註 671]민막(民瘼) : 백성의 고통. ☞

[註 672]언로(言路) : 대간(臺諫)에서 임금에게 여러 가지 정책(政策)이나 덕행(德行)을 간(諫)할 수 있는 길. ☞

 

*** 글 2 ****************************************

효종 9권, 3년(1652 임진 / 청 순치(順治) 9년) 10월 25일(계해)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분부에 응하여 올린 정치의 요령을 터득하라는 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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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분부에 응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천하의 일에는 모두 요령이 있으니, 요령을 얻으면 일은 반으로 줄고 공적은 배로 늘 것이며, 요령을 얻지 못하면 마음만 수고롭고 일은 날로 졸렬해질 것입니다. 마음을 바루는 요령은 분노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 것이며, 몸을 닦는 요령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마는 것입니다.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은 궁금(宮禁)을 엄하게 하여 사문(私門)을 막고, 우애가 흘러 넘치되 가르침이 그 가운데에서 베풀어지고, 가까이 모시는 자에게 엄절히 함으로써 멀리 전감(前鑑)에 징계되어 좌우 전후가 한결같이 바른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학문을 강구하는 요령은 항상 경건한 자세로 사리를 밝히며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를 따르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공경하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자세로 상제(上帝)를 대하는 것이 하늘을 공경하는 요령이고, 내 몸이 다칠까 조심하듯 윗사람의 것을 덜어서 아랫사람을 돕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요령이고,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일체가 되어 나라의 기본 법칙을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적용함이 기강을 세우는 요령이며, 형벌과 상이 알맞고 거조가 마땅한 것이 인심을 따르게 하는 요령입니다.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처신을 허물없이 하려면 반드시 간언을 받아들이고 널리 듣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검소를 밝혀 풍속을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소박한 음식을 먹고 허름한 옷을 입는 것으로 궁액(宮掖)을 거느리는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용도를 절약하여 백성을 넉넉하게 하려면 반드시 절도 있게 제약하고 겉치레 제거하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옥송(獄訟)이 다스려지게 하려면 반드시 감히 모든 옥송과 모든 신계(愼戒)에 간섭하지 말고 유사가 공평하게 다스리도록 맡겨 두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신하들이 함께 삼가고 공손하게 하려면 반드시 당색(黨色)을 다 잊고 시비와 현사(賢邪)를 가리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하늘의 큰 명을 맞아 이어 가려면 반드시 가혹한 정사를 없애고 인후한 풍속을 숭상하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뭇 신하의 곡직(曲直)을 알려면 반드시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고 충직한 자를 가까이하며, 강직하고 방정한 말을 좋아하고 순종하고 예삐 보이려는 꼴을 미워할 것이며,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면서 맞추는 것을 공손하다고 여기지 말고 직언으로 간하고 물러나기 좋아함을 거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정신을 돋우어 잘 다스리려고 도모하여 거행하지 않은 방책이 없으셨으므로 진실로 천의(天意)에 부합하고 인심을 확고히 하여 앉아서 태평의 공이 이룩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도(世道)가 날로 낮아지고 시정(時政)이 날로 어지러워져서 위에서는 하늘이 노하고 아래에서 백성이 원망하여 큰물과 가뭄이 잇달고 재해가 몰려드니, 신은 감히 전하께서 이 몇 가지에 대하여 그 요령을 얻었어도 오히려 보람을 얻지 못하시는 것인지, 또는 그 요령을 얻지 못하고 중도에서 배회하여 한갖 성려(聖慮)만 수고롭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고 두렵게 여겨 전에 하신 일을 크게 반성하고 성제 명왕(聖帝明王)이 이미 행한 큰 원칙을 다시 찾고 눈앞의 비근하고 잗단 정사를 따르지 말고 신이 이른바 그 요령이 있다는 것을 힘껏 행하소서. 수년 동안 이렇게 하시는데도 하늘이 재앙을 거두지 않고 정치에 성적이 없다면, 신이 망언한 주벌(誅罰)을 받겠습니다.

또 임금의 위엄은 천둥·번개 같을 뿐이 아니므로, 희로(喜怒)가 천리(天理)를 따르지 않고 상벌(賞罰)이 5용(五用)651) 에 어그러지면, 그 폐해로 반드시 백성이 손발을 둘 데가 없어지고 임금과 신하 사이가 날로 멀어져서 천지가 막히고 간사한 길이 열려서 의혹이 총명을 가리게 될 것이니, 이것은 어지러움을 가져오는 지름길입니다. 성세(盛世)에 멀리 귀양간 사람들이 반드시 사흉(四凶)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없고 경력(慶曆) 연간의 폄출(貶黜)652) 이 명류(名流)에서 많이 나왔는데, 곧바로 임금이 허물을 고친다고 한들 어찌 당초에 신중한 것만하겠습니까. 궁벽한 마을의 필부(匹夫)도 자손을 위하여 생각하는데 이는 사랑하는 천성에서 나온 것이니, 임금의 경우도 귀천이 다르기는 하나 자식을 사랑하여 부유하게 하려는 이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마는, 전장(田庄)·제택(第宅)에는 반드시 그 제도가 있습니다. 국운이 융성한 조종(祖宗)에서 경제력이 모자랐던 것도 아닌데 법전(法典)에 실린 기록은 각각 그 절도가 있었으니, 후세에 대한 염려가 깊은 것입니다. 한 명제(漢明帝)는 여러 아들을 분봉하면서 초(楚) 땅의 반을 회양(淮陽)에 붙였고 당(唐)나라 임금은 물방아를 공주(公主)부터 먼저 없애라고 명하였는데, 더구나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궁하고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운 이때이겠습니까. 신하를 예로 부려야 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매우 분명한데, 차꼬와 수갑을 채워 가두고 매질하는 것이 위로 대부(大夫)에게까지 미치니, 무너진 기강을 떨치고 바로잡는 데에는 보탬이 없고 도리어 나라의 체모를 손상하게 됩니다. 전에 한 문제(漢文帝)가 강후(絳侯)653) 를 잡아 다스렸는데 가생(賈生)654) 이 상소함에 따라 깊이 깨닫고 이때부터 뭇 신하를 예우하였으니, 임금이 간언을 채택함에 이것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신하의 의리로는 그릇되게 붕당을 이룸이 없어야 하는 법이니 자기 무리만 옳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배격하는 것은 실로 큰 죄입니다. 그러나 붕당을 없애려고 하면서 병근(病根)을 먼저 만들고, 감싸고 어그러진 실상을 구명하려 하지 않고 혼동하여 벌을 주니, 이 때문에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천심(天心)을 함부로 헤아리고 자취를 드러내지 않으려 꾀합니다. 그래서 쓸 만한 인재가 있어도 감히 천거하지 못하고 미워할 만한 죄가 있어도 감히 논박하지 못하며, 저편에서 천거한 것은 이편에서 사사로운 천거라 하고, 이편에서 논박한 것은 저편에서 모함한다 하여, 트집잡고 편들며 구호하고 배척하므로 흑백이 현란합니다. 전하께서 어찌하여 이 두 끝을 잡아서 보신(輔臣)과 시종(侍從)에게 물어서 쓸 만하면 쓰고 죄줄 만하면 죄주며 치우친 마음이 없이 처치하여 한결같이 공론에 따르지 않으십니까.

신이 비망기(備忘記)를 보니,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하여 아래에서 위를 엄폐한다.’는 하교가 있었는데, 성상께서 무엇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한 것은 그 까닭이 한결같지 않아서 군자 소인의 진퇴와 존비 상하의 도치(倒置)와, 개인에 접근시킨다면 선악의 소장(消長)과 공사(公私)의 호전(互轉) 등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어서 수시로 경계를 보입니다. 지금의 효상(爻象)은 과연 성쇠(盛衰)가 실도(失道)한 것입니다마는, 아래에서 위를 엄폐한 것이라면 반드시 권간(權奸)이 집정(執政)하여 성상의 총명을 가림이 있어서 꾸중이 위에서 나타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높은 지위나 요로에 있는 자가 뭇사람의 의견을 좇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정사의 권위가 의지할 데가 없어서 마치 키를 잃은 배와 같습니다. 이들이 어찌 다 재능이 없어 직무를 버려두고 태만한 자들이겠습니까. 다만 전하께서 강단이 너무 지나치고 위임이 전일(專一)하지 않아서 자신들의 허물을 바로잡는 데에도 겨를이 없는 것이니, 무슨 재능을 펼 수 있겠습니까.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다 그러한데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총명을 가리고 스스로 위복(威福)을 펼 수 있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언로가 이미 막혀 아랫사람의 뜻이 위에 통하지 않으니, 햇빛이 구름이 없는데도 혹 가려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신하에게 의심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성궁(聖躬)에 돌이켜서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힘쓰소서. 사문(四門)을 열어 안팎이 환히 통하고 성의가 서로 미더워서 아래로 광명(光明)을 이루어 태운(泰運)이 크게 오게 한다면, 흐린 것이 절로 없어지고 양덕(陽德)이 바야흐로 형통할 것입니다.”하니, 답하기를,

“경이 내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염려하여 이토록 간절히 경계하니, 내가 불민하기는 하나 동심(動心)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뜻을 선뜻 말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닐 듯하므로 감히 못할 뿐이다. 경은 이 뜻을 바꾸지 말아서 자주 깨우쳐 주고 내 과실을 부지런히 공박해 주기 바란다. 원차자는 한번 보고는 그 조목조목 아뢴 요령들을 기억할 수 없어서 늘 보려 하므로, 내리지 않겠다.”하였다. 이때 이변이 거듭 나타나서 인심이 어수선하고 상도 위구하여 직언을 구하는 하교에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하다는 말을 언급하였는데, 윤선도(尹善道)가 벌써 이것으로 뜻을 맞출 생각을 하여 임금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이때부터 조정 신하들 중에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경여가 상소하여 언급하였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5책 582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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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651]5용(五用) : 5복(五服)과 5형(五刑)을 등급에 맞게 쓴다는 뜻.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이 덕 있는 자를 명하거든 오복(五服)으로 등급에 맞게 표창하고 하늘이 죄 있는 자를 치거든 오형으로 등급에 맞게 징계하시어 정사(政事)를 힘쓰소서.” 하였다. ☞

[註 652]경력(慶曆) 연간의 폄출(貶黜) : 송 인종(宋仁宗)은 송대(宋代) 제일의 인주(仁主)로 일컬어지나 경력(인종 중기의 연호, 1041∼1048) 연간에 명신(名臣)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 등을 파직했었다. ☞

[註 653]강후(絳侯) : 주발(周勃). ☞

 

*** 글 3 ***********************************************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5월 11일(갑오)

정언 이민서가 상소하여 간쟁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사기를 높이는 등의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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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 이민서(李敏敍)가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나라의 일이 날로 위태해지고 백성이 날로 야위어 갑니다. 위태하여도 구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고, 야위어도 돌보지 않으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납간(納諫)과 보민(保民)에 관한 말씀을 먼저 아뢰어 보겠습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말이 편벽하여 남을 용납하지 않아 한 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리쳐 쫓는 일이 계속되므로, 대소 신하가 허물을 바로잡기에 겨를이 없고 머리를 감싸쥐고 발을 포개면서 두려워 삼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가 현격하기는 하나 정의(情義)를 서로 보전하고 예법(禮法)을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초개처럼 여기기만 한다면 어찌 국사(國士)로서 보답하기를 요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문사(文士)·대부(大夫)는 임금이 심복으로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조종조에서는 매우 가까이하는 예우를 하셨으니,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옛일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어받아 배양에 더욱 힘쓰셨는데 나라를 재건한 공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에 힘입었습니다. 신은 오늘날 가까이하여 믿는 자가 과연 어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나라에 친신하는 신하가 없어 심복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일을 맡겨도 통괄함이 없습니다. 벌떼처럼 일어나는 젊은이만 취하여 모아내는 일을 구차히 쾌하게 여기어 조정의 대체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원기를 해치니, 전하께서 취사를 그릇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에는 신하를 대우하는 예가 더욱 박하여 가두고 매 때리는 것을 가벼운 벌로 여기고 차꼬가 관원에게 두루 미치고 오라가 고관에게까지 미칩니다. 사기가 꺾여 잡류가 횡행하고 염치가 아예 없어져 명절(名節)이 땅을 쓴 듯이 없으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통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도 못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어질고 충실한 신하에게 심복을 맡기고 정직하고 간쟁하는 신하에게 이목을 붙여서 정성을 미루어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를 굽혀서 말을 들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통하고 곧은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고 전(傳)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서 왕이 되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예전부터 이제까지 백성이 편안하지 않고도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이 오늘날의 조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정령(政令)과 베푸는 일에 조금이라도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명(敎命)이 내려질 때에 조금이라도 홀아비나 홀어미를 가엾이 여기는 뜻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하의 뭇 신하 중에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관한 말을 어전에서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경외(京外)의 신하 중에 전하의 백성이 유랑하여 시달리는 정상을 대궐에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슬픈 우리 백성이 한 해동안 내내 고생하며 근력을 다하여 조세를 바쳐도 힘이 모자라므로 몹시 근심하면서 오히려 전하께서 조금이라도 덕의(德意)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를 돌보지 않고 바야흐로 무익한 일에 뜻을 기울이시니, 독책(督責)하는 자는 잔혹한 짓을 자행하고 재능을 뽐내는 자는 남보다 더하여 귀염을 사려고 힘씁니다.

추쇄(推刷)는 작은 일인데 거조(擧措)가 너무 엄중하고 과조(科條)가 너무 엄밀하며, 염초(焰硝)를 굽는 것은 말단의 일인데 나라의 반이 소요하고 갇힌 사람이 옥에 가득합니다. 서울 군사가 먹는 것은 날로 늘어 가고 경창(京倉)의 곡식이 축나는 것은 날로 많아집니다. 나라의 큰일이라면 오히려 핑계할 수 있겠으나, 한 궁가에서 쓰는 것이 수 백만금이나 되고 사사로운 자봉(自奉)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므로 고혈은 이미 다 짜냈고 잗단 이익까지 죄다 다툽니다. 법을 세워 넌지시 빼앗고 판매에 세를 매겨 교묘히 거두어 들이니, 전하께서 재능과 심산(心算)이 있는 신하를 얻으시더라도 눈앞의 일만 처리한다면 또한 임금이 재물을 다스려 풍족하게 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근본을 맑히고 악의 근원을 막되 백성을 아끼는 것은 절용(節用)에서 시작하고 절용은 생약(省約)에서 시작하여 궁중의 용도(用度)와 군국(軍國)의 모든 수용(需用)을 다 조종 때의 옛 규례와 같이 하소서. 재물이 한없이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국가의 정항(正項)인 공납(供納)만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사치의 해독은 천재(天災)보다 심한데, 말속(末俗)이 이미 투박해져서 참람하여도 금하지 않으니, 몸소 거친 옷을 입는 교화를 숭상하여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대저 오래 쇠퇴한 데에서 약세를 만회하여 중흥의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 어떠한 사업인데 터덜터덜 느릿이 걸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는 사의(私意)를 구차히 쾌하게 하고 대계(大計)에 소홀히 하여, 본심을 간직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허물을 듣기 싫어하고 일을 하는 데에는 먼저 백성의 재물을 다 씁니다. 잗단 오락에 빠져 금원(禁苑)이 놀이를 구경하는 마당이 되고 사화(私貨)를 불려 내사(內司)가 도피하는 자를 모이게 하는 수풀이 됩니다. 인척을 높여서 관방(官方)이 어지럽고 희노(喜怒)를 경솔히 써서 상벌이 어지러우며, 아첨이 풍속이 되어 사신(私臣)이 등용되고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날로 성하여 덕을 숭상하는 것이 쇠퇴합니다. 깊은 궁중에서 한가히 계시는 동안을 신이 아는 바가 아니나 가무와 여색, 술이 또한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뵙건대, 전하께서는 불세출의 자질로 큰일을 할 때가 되었고 만승(萬乘)의 자질을 가지고 여러 대를 이어온 기업(基業)을 이어 받으셨으므로 비상한 공적을 머지않아 기대할 수 있는데, 지(志)가 기(氣)에 빼앗기고 의(義)가 이(利)에 가리워서 지사(志士)가 해체되고 백성이 실망하게 하십니다. 전국 때 말세의 임금이 단단히 마음먹고 오래 생각하여 세운 것이 있었던 것만 못하시니,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하였는데, 상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6책 13면【분류】 *정론-간쟁(諫諍)

 

 

2011-07-1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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