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憤怒)를 어찌할까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뻐하거나 분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이로써 기뻐하거나 분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게 되면 상벌(賞罰)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그리되면 신하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게 되니 전하의 귀에서 거슬리는 올바른 말이 날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657년 5월5일 백강 이경여(李敬輿)선생이 효종대왕에게 상차(上箚)하신 말씀으로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분노하는 감정을 절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사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때를 잃고 명분을 잃어 중용의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에 문제가 된다. ‘중용(中庸)’에서는 중화(中和)를 강조하며 말하기를 “희로애락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표출 되지 않았을 때를 중(中)의 상태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그것이 밖으로 적절히 표출되어 원칙에 맞을 때를 화(和)의 상태라고 한다(發而皆中節 謂之和). 중화(中和)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본(大本)이며 천하를 통치하는 달도(達道)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불가피하고 적확(的確)한 분노는 오히려 조직을 긴장시키고 자신과 주위를 생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의 가르침도 기본적으로 급하게 화를 내지 말라는 취지이다. “급하게 화내지 말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전도서 7장9절>. “사랑은 쉽게 화를 내지 아니 한다” <고린도전서 13장5절>.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성전(聖殿)에서 상행위를 하여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급하고 격하게 화를 내신 적이 있으며, 우리들도 오히려 깊은 관심이나 최선의 방책으로 급하게 화를 낼 수도 있다. 화를 내는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분노가 우리를 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갈 때에 죄가 되는 것이다.
“화가 나면, 이로 인하여 죄악으로 빠지지 말도록 하라” <에베소서 4장26절>. 이를 위해 성경이 제시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삼아 가까이하여 그의 성품 즉 사랑, 겸손, 온유, 절제, 양선(良善), 오래 참음, 등의 성품을 배워가라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에게 덕(德)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를 내어본 적이 없으니 그의 성품을 본받아서 살아갈 때 우리도 아무런 덕(德)이 없는 파괴적인 분노는 절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2. 8.11.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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