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칭송을 받을 것인가?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말 4000필을 소유한 부자였지만, 죽었을 때 그의 덕(德)을 칭송(稱頌)하는 백성이 없었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 아래서 굶어 죽었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송하고 있다.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은 부(富)에 있지 않고 남다른 행동에 있다’는 시(詩)는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12장>.
무릇 사람들의 칭송이란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타산에 따라 칭송하거나 비난하기가 쉬우며 또한 칭송이나 비난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기가 쉽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일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 마음에 죄성(罪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肢體)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장 21-24절>.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바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장 19-21절>. 이 길만이 우리가 평강(平康)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두고 살아가야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함과 외면(外面)으로 함이 참과 거짓의 분별됨이요, 이익을 바라고 착한 일을 함과 당연히 할 일로 알고함이 이욕(利慾)과 의리(義理)의 다른 길이니, 이를 잘 살펴서 흑백(黑白)을 분별함과 같이 하여 바르게 행하라.”<백강 이경여 선생 가훈>. 그리하면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들을 자유롭게 하고 내 마음의 화평함과 참된 영혼의 즐거움을 누리게 할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처럼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은 양심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이해타산이나 그릇된 신념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속이고 선동하는 데에 크게 기인한다. 이는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된 문재인 정부시절의 ‘귀순어부들의 강제북송사건’과 ‘어업지도 공무원을 탈북자로 둔갑시켜 죽게 하고 그 가족들을 탈북자 가족으로 만들어 고통을 받게 한 사건’에서도 들어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의 칭송을 받고 무슨 이익을 얻고자 이런 죄악을 저질렀는가? 더 이상 관련자들은 파렴치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사죄하고 회개함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기 바란다. 그 길만이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을 살리고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어차피 이미 들어난 증거만으로도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고 정치 선동을 하여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니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속히 자백하고 사죄하라! 그러면 그들은 늦더라도 하나님의 칭송을 받아 마음의 평안과 영생(永生)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2. 7.20. 素淡
<논어(論語) 계씨(季氏) 12장 제경공유마천사(齊景公有馬千駟)>
齊景公제경공이有馬千駟유마천사하되死之日사지일에民無德而稱焉민무덕이칭언이오伯夷叔齊백이숙제는餓于首陽之下아우수양지하하되民到于今稱之민도우금칭지하나니라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인저
齊나라 景公은 말 4000필을 소유한 부자였지만, 죽었을 때 그의 덕을 칭송하는 백성이 없었고, 伯夷와 叔齊는 首陽山 아래서 굶어 죽었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송하고 있다.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은 富에 있지 않고 남다른 행동에 있다’는 詩는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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