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속의 공감 그리고 고독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 된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 된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더 가난하고 더 고독하게 되는 까닭이다. 사람이 타인에게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이 들면서 인생의 경험을 많아질수록 위의 말은 참으로 공감이 되는 바가 있다. 모든 인간은 각기 반드시 서로 다른 면이 있기 마련이고 또 상대의 속을 다 알면 알수록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꼭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만 진리를 따라 사랑과 예의(禮儀)에 맞게 적절히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침묵속의 공감은 진리에 부합되는 공감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그와 멀리하여야 한다. 오직 진리만이 영원한 푯대요 길벗이 되어야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찾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리 안에서 고독한 사람이 대중가운데 공감을 얻는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이다. 결국은 진리를 따라 사는 길만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준다고 해서 본질이 바른 것은 아니며 마음의 평안이 지속되지도 않는다. 주변의 사람의 평판은 다 옳은 것이 아니며 세월을 따라 변해가기도 한다.
우리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상상력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그러기에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정신력이 약하고 영성(靈性)이 깊지 못할수록 그는 고독을 두려워한다. 고독을 즐기도록 노력 해보자.
고독을 즐겨하였던 본보기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의 고독을 만날 수 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장 15절, 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인기가 하늘 같이 오르던 때이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그런 때에 예수님은 인기에 전혀 연연하지 아니하시고 조용히 물러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자기만의 고독한 시간을 가졌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기에 약하고 평판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인기 최고인 순간에 오히려 물러나시어 고독함 속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꾸어 나가셨다. 훗날 그가 십자가상의 죽음을 감당하시는 깊은 영성은 이렇게 길러져 간 것이다.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사는 것은 쉽다. 홀로 살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좇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의 한 복판에서 고독 가운데서 독자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자이다 ~ 랄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진리를 사모함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높은 영성에 이르려고 자신의 견고한 내면세계를 개발하고 유지, 발전하게 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심오한 원칙을 온몸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온갖 거짓이 넘쳐 나고 있어 참으로 혼란스럽다. 그러나 남들이 정치지도자들이 거짓을 말하고 속이고 한다고 해서 그런 풍토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진리를 사랑하고 양심을 지키는 이들끼리 침묵속의 공감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 고독해져야한다. 그래야만 그 영혼에 영원한 축복이 깃들기 때문이다.
2020.10.2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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