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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소기위이행(君子素其位而行)

Abigail Abigail 2019. 11. 24. 16:19

군자소기위이행(君子素其位而行)

 

청음 김상헌 선생이 백강 이경여 선생과 백주 이명한 선생에게 부친 시로서, 병자호란 패전 후 청음 선생이 먼저 청나라의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서 부친 시이다. 훗날 세분 모두 심양에 모두 볼모로 잡혀간다.

 

심양(瀋陽)의 동관(東館)에서 사재(四宰, 우참찬) 이직부(李直夫)와 판서(判書) 이천장(李天章)에게 주다. 직부(直夫)는 정승 백강 이경여(李敬輿)의 자()이며, 천장(天章)은 판서 백주 이명한의 자이다.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만나 보지 못한 지가 6, 7년이나 되었는데, 애척(哀戚)과 환난을 겪는 중에도 다행히 죽지 않았다. 그러나 또다시 각자 수천 리 밖에 떨어져 있어서 한번 해후할 길이 없었다. 이에 자나 깨나 서로 그리워하면서 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혹 임학(林壑)이나 강호(江湖)의 사이에서 서로 만나게 해 이 여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비록 그 지극한 소원은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또한 어찌 음산(陰山)의 대교(大窖)에서 눈을 씹고 가죽을 먹는 맛을 실컷 보게 할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하늘의 뜻은 역시 이상하기도 하다. , 명이(明夷)의 걱정은 성인께서도 면치 못하였던 바이니 우리들에게 있어서야 어떻겠는가. 다만 스스로 그 도를 다한다면 군자가 말한 소위(素位)하라는 훈계를 저버리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에 애오라지 짤막한 시를 지어 나의 뜻을 부치는 바이다.

 

 

인생살이 한 백년을 산다 하지만 / 人生期百禩

기쁠 때와 슬플 때가 반반이라네 / 一半憂與喜

더군다나 살기 힘든 시대를 당해 / 況當艱虞際

만난 바가 모두 이치 어긋난 데랴 / 所遇皆逆理

수심 단서 뱃속에 꽉 맺히어 있고 / 愁端結腸肚

위태로움 아침저녁 박두해 오네 / 危辱迫朝暮

평소에 늘 인과 의를 흠모했거니 / 平生慕仁義

인과 의를 어찌 서로 그르치리오 / 仁義豈相誤

굴원 역시 말해 놓은 것이 있나니 / 屈子亦有言

모두 수행 좋아한 탓 아니었던가 / 莫好脩之故

하늘에게 물어봐도 답 아니 하고 / 問天天不語

사람에게 물어봐도 알지 못하네 / 問人人不悟

내 일찍이 성인 훈계 들어봤거니 / 嘗聞聖人訓

소위하란 지극한 말 하시었다네 / 素位有至論

나와 뜻을 같이하는 선비 있기에 / 顧我同志士

시를 지어 거듭거듭 권면하누나 / 作詩重勸勉

 

[-D001] 음산(陰山)…… : 한나라 무제(武帝) 때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는데도 굴하지 않다가 큰 구덩이 속에 갇혀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해(北海)로 옮겨져서 양을 치며 지냈는데, 그때까지 한나라의 절()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그 뒤 갖은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게 되면서 비로소 한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卷54 李廣蘇建傳 蘇武

[-D002] 명이(明夷) : 주역64괘 가운데 하나인 명이괘(明夷卦)에서 나온 말로, 혼암한 임금이 위에 있어서 어진 사람이 해를 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불행한 운수를 만나 청나라로 끌려간 것을 말한다.

[-D003] 소위(素位)하라는 훈계 : ()는 현재라는 뜻인데, 전하여 처해 있는 위치에 알맞게 행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중용장구(中庸章句)14 장에 이르기를, “군자는 현재 있는 위치에서 그 자리에 맞는 일을 행하고, 그 외의 다른 일은 바라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하였다.

[-D004] 굴원(屈原) …… 아니었던가 : ()나라의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옛날에는 향기롭던 풀들이, 지금은 다만 이리 쑥덤불이 되었는가. 그 어찌 다른 까닭 있어서이겠나, 수행을 좋아해서 받은 해가 아니던가.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 豈其有他故兮 莫好修之害也하였다.

 

청음집 제12/ 설교후집(雪窖後集) 102(一百二首) 계미년(1643, 인조 21) 다시 심양(瀋陽)에 들어간 뒤 지은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 |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