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좋은 목사 나쁜 목사

Abigail Abigail 2019. 10. 17. 13:59

좋은 목사 나쁜 목사(1) 2018-06-04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10장과 구약성경의 에스겔 34장을 목자장(牧者章)이라 한다. 좋은 목자와 나쁜 목자,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의 기준을 일러 주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는 목사를 3부류로 구분하여 일러 준다.

첫째는 절도와 강도 같은 목사

둘째는 삯꾼 목사

셋째는 선한 목사이다.

 

먼저 요한복음 101절에 절도, 강도 같은 목사가 등장한다.

목사이면서 하나님의 양들인 신도들을 괴롭히고 등쳐먹는 목사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상식적으로는 설마 그런 목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실제로 그런 목사들이 적지 아니하다. 슬픈 일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 때는 목사라면 정직함으로 인정받고 신도들을 위해서라면 밥 굶기를 서슴지 아니하고 억울하여도 새벽기도 시간에 강단 밑에 무릎 꿇은 채로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는 것만으로 끝내는 목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목사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 못한 목사들이 늘어나게 되면서이다. 언제부터 목사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변하여지게 되었을까?

 

아마 1970년대에 들어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미증유의 호황기(?)를 맞게 되면서 목사직이 고생하고 희생하는 직이 아니라 대접 받고 높임 받는 직으로 인식되어지게 되면서 목사세계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인구조사 통계표에 의하면 1970년 한국교회 신도수가 390만이었고 십년 뒤인 1980년에는 810만으로 증가되어 있다.

 

1970년대 10년 동안에 한국교회 신도수가 2배 이상으로 증가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먼저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인 신학교가 먼저 그릇되기 시작하였다. 신학생이 되고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신학교로 모여들게 되었다. 목사직이 대접 받고 잘 나가는 직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리고 신학교들이 난립(亂立) 되어지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기본 학력이나 시설이나 학교운영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신학교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가 지나 80년대가 시작된 즈음에는 신학교가 무려 313 학교나 난립케 되었다.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가 맞은 재난(災難)의 시작이었다.

 

좋은 목사 나쁜 목사(2) 2018-06-05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10장과 구약성경의 에스겔서 34장을 목자장, 목사장이라 부른다. 좋은 목자와 나쁜 목자,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에 대한 기준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어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3부류의 목사를 언급한다. 첫째는 절도와 강도 같은 목사이다. 둘째는 삯꾼 목사이다. 셋째는 선한 목사이다. 어제 글에서는 절도와 강도 같은 목사들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니 오늘은 삯꾼 목사에 대하여 적으려 한다.

 

요한복음 1012절과 13절에서 삯꾼 목사에 대하여 다음 같이 일러 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보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라." (요한복음 1012, 13)

 

목사가 삯꾼이라 함은 목사직이 사명감(使命感)에 따라 헌신하는 성직(聖職)이 아니라 직업으로 목사직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명감에 의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양 떼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수단으로나 직업으로 목회를 하기에 신도들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이 된다.

 

에스겔서 344절에서는 목자가 감당하여야 할 사역 5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한다.

둘째는 병든 자를 고친다.

셋째는 상한 자를 싸매 준다.

넷째는 쫒기는 자를 돌아오게 한다.

다섯째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다.

 

강도 같은 목사와 삯꾼 목사는 신도들을 대할 때에 이런 기준에 인생을 투자하려들지 아니하고 포악으로 신도들에게 군림한다. 그리고 자신의 안일과 이익을 위해 신도들을 이용하려든다. 한국교회의 목사 수를 100으로 잡는다면 위에 적은 3부류의 목사들 중에 분포가 어느 정도가 될까?

 

어림짐작으로 잡자면 절도와 강도 같은 목사들이 10% 정도일 것이고 삯꾼 목사가 5, 60% 정도일 것이고 선한 목사가 아마 3, 40%가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 두부류의 목사를 줄이고 셋째 부류의 목사를 늘여 나가는 일이 한국교회가 하여야 할 일의 첫째가 될 것이다.

 

좋은 목사 나쁜 목사(3) 2018-06-06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찐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에스겔 342, 3)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를 구별 지을 수 있는가?

 

나쁜 목사에게는 5가지 특성이 있다. 이들 특성들로 나쁜 목사들을 구별할 수 있다.

 

첫째는 자기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목사가 나쁜 목사이다.

 

기독교는 지난 2천년 역사에서 숱한 과오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비판을 용납하여 비판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왔다. 목사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열린 공동체가 되어 격의 없는 비판이 목사에게도 허용되어져야 한다.

 

둘째는 물질과 은혜를 결부시키는 목사가 나쁜 목사이다.

 

성도들의 헌금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바친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은 헌금 바치는 것을 은혜와 결부시켜 많이 바치면 은혜도 많이 받고 적게 바치면 은혜와 축복도 적게 받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런 목사가 나쁜 목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셋째는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앞세우는 목사가 나쁜 목사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다. 목사는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의 하인으로 신도들을 섬기는 자리이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은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든다. 이런 목사는 당연히 나쁜 목사이다.

 

 

좋은 목사 나쁜 목사(4) 2018-06-07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에 대하여 살피고 있다. 어제 글에서 나쁜 목사를 가려내는 기준으로 5가지 조항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중에서 어제 글에서는 3가지를 적었다. 오늘은 나머지 2가지 조항을 적겠다.

 

나쁜 목사를 가리는 조항들 중의 네 번째는 교인들 중에서 편 가르기를 하는 목사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교인들과 반대하는 교인들을 편 가름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교인들로 뭉치게 하여 반대하는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왕따하여 교회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 가장 치사하고 목자답지 못한 목사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편 가르기가 심한 사회이다.

 

사회생활에서 편 가르기에 상처 받고 지친 영혼들이 교회에 와서 위로 받고 치유 받아야 하는데 교회에서까지 그런 변을 당하면 의지할 곳 없는 영혼의 고아가 된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왔다" 하셨거늘 목사가 영혼들을 품지 못하면 그런 교회는 이미 교회이기를 그만둔 교회가 된다. 그런 목사는 목사이기를 멈춘 목사가 된다.

 

나쁜 목사를 가리는 조항의 다섯 번째는 강단에서 교인들을 향하여 <저주 받을지어다>고 선포하는 목사이다. 생각 외로 그런 목사들이 적지 않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반대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면서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곤 하는 목사까지 있다. <○○○ 권사는 목사 반대하다 암 걸렸고 ○○○ 집사는 부도났어> 하고 소리친다.

 

교인들은 생각 외로 이런 선포에 취약하다. 당회에서나 제직회에서나 교인들의 모임에서 선한 의도로 반대 의견을 발언하였다가 목사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래서 운전하다 과속으로 딱지를 떼어도 <내가 하나님의 종을 반대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심판과 저주가 아니라 위로와 평강이라" 하였다. 강단에서 어떤 경우에든 용서와 위로의 말이 선포되어져야지 저주나 심판, 정죄나 악담이 선포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쁜 목사의 전형적인 사례가 심판과 저주를 발언하는 목사이다.



김진홍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