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려면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가 전과는 완연히 달라졌는데, 이는 사실 우리가 먼저 자극한 것 이 지나친데 연유한다. 1965년의 한일협정은 이유 고하간에 국제협약인데 우리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니 세계의 여론은 일본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에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자.
세종대왕은 돌아가시기 사흘 전인 1450년(세종32년) 2월 14일 동부승지 정이한에게 유언을 말씀하시기를 “왜(倭, 일본)와 야인(野人, 여진족 훗날 청나라)은 가볍게 대할 일이 아니다. 언제라도 소홀함이 없어야한다”고 말씀하였다. (세종실록에서)
그러나 후손들은 이 유언의 말씀을 전혀 지키지를 못했다.
이후 조선조정은 평화에 취해 일본에 통신사 파견을 중지하였고, 율곡 이이 선생이 ‘십만양병’을 주창하자 유성룡 등이 이에 반대하며 무산되었고,
나아가 임진왜란 직전에 겨우 다시 보낸 통신사의 말이 엇갈렸다. 황윤길은 일본이 침략을 예측한 반면 김성일은 일본의 침략은 없다고 보고하여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는데, 유성룡이 김성일에 묻기를 왜 침략의 징후가 없다고 했느냐고 물으니 김성일의 대답이 “백성들이 동요할 것 같아서” 라고 하였다. 참으로 한심한 무사안일의 극치인 답변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은 청나라의 국력이 급격히 커지는데도 우리 조상들은 청나라가 야만의 문화를 가진 나라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나 역시 임진왜란을 격고 나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끼리 다투며 대비에 소홀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국제정세의 동향에 너무 어두웠고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자학만이 용인되어 나라의 정신적 기둥이 된 것도 편협한 아집의 병폐를 낳았다.
이후 영조 정조 시대에 중흥의 시대를 이루었으나, 구한말에 이르러는 다시 모두가 정신을 놓고 세계정세도 모르고 자기집단의 이해에만 골몰하고 외국 정신과 문물을 배울 생각은 아니하고 오로지 배격만하다가 한일 합방의 비극을 불러왔다.
북한의 육이오 남침 시에도 탱크가 서울로 진격해오는 데도 동대문구장에서 야구경기를 하고 있을 정도로 정세에 어둡고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망해온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가 있다.
첫째, 정직하지 못하고, 나라야 어찌되든지 우선 자기나 자기집단의 이해에만 온힘을 다하며, 이로 인해 국론 통일이 되지 않는다.
둘째, 민감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에 민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위기의 징후가 있어도 우선 나의 이해에 반하니 무시해 버린다.
셋째, 과거의 교훈과 비극을 쉽게 망각하고 미리 대비하지를 못한다. “유비무환”의 교훈을 잊 고 지낸다.
지금 일본의 태도는 우리와의 국교단절로 까지 갈 수가 있어 보이고 이는 미국의 승인 하에 하는 것일 터인데, 우리는 무사안일에 빠져있고, 거짓말이 난무하며, 지금의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징후가 우리가 북한과 같은 체제로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지금 크게 위험함을 느껴 많은 식자들이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국민 각자는 무사안일에서 벗어나 늦기 전에 깨어 일어날 지어다! 늦은 뒤에는 땅을 쳐도 소용없고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특히 타락한 성직자들은 회개하고 나서라.
2019. 7.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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