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프리드리히 니체).
산다는 것은 곧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과 역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역경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찾아내야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목적을 찾아낸다면 그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온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가까워져야만 한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 질 수가 있는가? 그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이다. 그대는 지금 인생의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나중에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틀림없이 천국에서 요나를 만나게 돌 것이다. 요나와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물어 본다. “요나 선지자님! 세상에서 살아가던 중 가장 생각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요나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다가 고래뱃속에 3일 있을 때입니다. 그 때 나는 가장 하나님과 가까웠던 때였지요.”
이런 이치를 깨달은 홍자성은 그의「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뜻은 예측하기 어렵다. 시련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영달(榮達)을 주기도 하고 영달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다음은 또 시련을 준다.”라고 하여 우리 인생에 시련과 역경이 무시로 찾아옴을 일러주고 있으며, “역경에 처한 때에는 신변(身邊)의 모든 것이 양약(良藥)이 되어, 절조(節操)나 행동이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닦아진다. 순경(順境)에 있을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凶器)로 화하여 몸 전체의 기운이 빠져 나가도 깨닫지 못한다.”라고 하여 역경의 이로움을 말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과 가까워져야만 하는데, 나아가 그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심을 또한 알아야 한다.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말하기를 “(나치 수용소에 있을 때 어느 날 아침 일찍 우리 수감자들은 작업장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서로를 부축하여 몇 마일을 걷는 동안 나는 아내를 생각하였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하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여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다. 사노라면 자기한계에 부딪혀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기진맥진하여 질 때가 있다. 그런 때에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고 그 사랑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노라면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그런즉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사랑하며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능히 이겨내고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25. 8. 4. 素澹
'안분낙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살아있는 희망 (2) | 2025.08.10 |
|---|---|
| 분수를 지키며 살자 (7) | 2025.08.08 |
| 인륜을 밝힘 (8) | 2025.07.30 |
| 하늘의 이치 (3) | 2025.07.28 |
| 갈아 앉고 있다고 느낄 때 (3) | 2025.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