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어리석게 하는 것
“사문(沙門, 불교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어 내 가르침(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은 세속의 온갖 재산을 버리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 하루 한 끼만 먹고 한 나무아래에서 하루이상 머무르지 말라.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愛着)과 탐욕(貪慾)이기 때문이다.”<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이 집착(執着)의 화살을 뽑아 내지 않는 한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으리.”<장로게경(長老偈經)>.

세속의 것들에 집착하여 애착을 가지고 탐욕을 부리지 말라. 이것들이 우리를 어리석게 하는 것들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1서 2장 16절). 세속의 것들과 세속적인 가치관은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탐욕을 부리도록, 경건(敬虔)하지 못한 길로 들어서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이들은 그 어는 것도 우리에게 경건한 인격을 수련하는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 후 나라의 역경(逆境)을 딛고 일어서려는 임금의 마음자세에 대해 효종대왕에게 말하기를 “사욕(私慾)을 잘 이긴다면 무슨 일이든 쉽게 성취될 것입니다.[아사능극(我私能克) 사무족위(事無足爲].)”라고 하여, 역경을 극복하는 자세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사로운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임을 강조한 바가 있다.<백강 이경여 선생 ‘신도비(神道碑}’에서>.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 1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탐심을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세상의 탐심을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자유와 평강(平康)과 기쁨이며, 또한 우리가 탐심을 내려놓을 때 그것이 참되고 변함없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사탄(Satan)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지라고 하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유혹한다. 내려놓으면 모두 잃어버린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하나님께 내려놓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후히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시경(詩經)」 삼 백편의 뜻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모든 사악한 생각을 물리치라.[사무사(思無邪)]”라고 하면서 모든 사악한 생각을 물리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한 바가 있다. 마음의 생각이 모든 행동을 지배하고 행동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악한 생각을 물리치는 방도, 세상의 탐심을 내려놓는 방도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게 말씀한 것은 성경이니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이것을 이룰 수 없고 성령(聖靈, Holy Spirit)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살라고 일러준다. 죄악에 물든 성품에 지배되는 사람들은 사악한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일들을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쓴다.”(로마서 8장 5절).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길로 들어서는 방도에 대해서 「시편(Psalms)」 기자(記者)는 말하기를 “복(福)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亨通)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편 1편 1-4절)”라고 하였다.
2025. 5.29.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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