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으뜸조건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고 진리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한바 있다.
또 공자는 참 진리를 알게 된다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는, 부질없는 외부로 부터의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진리를 알아 얻는 기쁨, 희망, 만족과 평안 등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통한다고 본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상부귀영화의 대명사인 솔로몬 왕은 스스로 고백하기를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하였으며, 오직 참 진리와 지혜를 얻기를 희구하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세종대왕은 한평생 백성을 위한 생각과 노고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었으나, 또한 영혼의 갈 바를 물어 스스로 최고의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에도 심취하시었다. 영생(永生)을 통하는 참 진리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임진왜란 때 불가사의의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은 그 큰 공훈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평생은 별로 행복하였다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보여 진다.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고뇌의 연속이다.
조선 중기 명신 백강 이경여 선생은 결국 “하늘을 섬기는 도리”와 “마음의 수양”을 최고의 덕목으로 자주 강조하였다. 많은 공부에도 확실히 알 수가 없는 참 진리를 ‘하늘의 섭리’와 ‘스스로의 마음’에서 찾아가려는 노력이다.
아래의 글은 우리들이 흔히 쉽게 말하는 행복의 조건인 물질의 풍요가 가지는 한계를 잘 보여준다.
1. 10만불이면 좋아질까? 이시형 박사 (넷향기 2012. 1.26)
우리 국민소득이 10만불이 되면 우리 국민이 행복해지고 삶의 질도 올라가고 삶의 만족도도 올라갈까요? 제 대답은 불행하게도 NO입니다.
경제대국 미국의 경우를 한번 살펴봅시다. 미국은 지금 GNP가 5만불에 육박하고 있는 세계 제일의 부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생활만족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체로 수평선이라는 것이 최근 통계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버지세대보다 더 못해졌다.' 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웃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도 누가 뭐라 해도 경제대국입니다. GNP가 5만불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도 50년 말 한국전 특수 이래 현재까지 행복지수는 수평선이라는 것이 일본의 통계입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쓰나미, 원자로 사건만은 아닙니다. 그전부터 일본의 생활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일본의 많은 사람들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세계경제대국 미국, 일본이 왜 그럴까요? 많은 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GNP가 올라간다고 국민의 만족도, 행복도가 비례해서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88올림픽 때 우리는 GNP가 4천불인데도 국민의 생활만족도는 엄청 좋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느 정도 올라가면 더 이상 올라가도 국민의 생활만족도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대개 만불에서 만오천불이 한계라고 합니다. 이때가 제일 살기가 적당하고 좋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88올림픽 때가 정점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날 이후 한국의 행복도나 삶의 만족도는 전혀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GNP가 5배나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평행선을 걷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정점에 그 덫에 걸린 느낌이 있습니다. 대게 만불에서 만오천불 이면 도로도 생기고 집도 있고 직장도 그만그만하게 생기고 그만하면 살기가 좋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결론이고 저도 돌아보면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물적, 외적, 경제적 성장이 좋아진다고 국민들의 만족이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정신적이고 내적인 성숙입니다. 이제는 물적, 경제적 성숙이 아니고 정신적인 성숙. 그래서 조금 모자라도 그래도 고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더 더 하는 심리에 빠진 이상 우리는 만족할 수도 없고 생활은 항상 부족하고 불만이고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만해도 참 고맙다. 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행복의 으뜸조건
위의 글 말미에서 참 행복은 정신적, 내적인 성숙에 달려있다고 넓게 지적하고 말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참 진리를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인격의 성숙이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의 고난, 역경 등 다양한 경험들은 이를 향해가는 우리들의 “훈련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 진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사람이 가장 깊은 고난과 고뇌 가운데에 있을 때에 가장 잘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석가모니도 그래서 출가하여 긴 고행의 세월을 보낸 것 같다. 베토벤 영혼의 표현인 “합창”교향곡 중 ‘환희의 송가’도 그의 말년, 최고 고난의 시기에 태어났다. 헨델의 “메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행복은 인격과 영혼의 성숙으로 가는 길에서 그 상태에 따라 얻게 되는 부산물이다.
2012. 2. 2. 이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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