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선비를 죽일 수는 있어도

Abigail Abigail 2025. 3. 17. 23:43

선비를 죽일 수는 있어도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그가 품은 진리를 향한 굳은 뜻이 평생에 걸쳐 어떤 처지에서도 변함이 없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그대가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는 자유로울 수가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 안에 머물면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이런 인간다운 인간의 품성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붉은 모래는 갈아서 가루로 만들 수 있지만 그 붉은 빛은 빼앗을 수 없고, 돌을 깨뜨릴 수는 있으나 그 굳은 성질을 빼앗을 수는 없으며, 선비를 죽일 수는 있어도 그 굳은 뜻을 빼앗지는 못한다.[丹沙可磨而不可奪其赤(단사가마이불가탈기적) 石可破而不可奪其堅(석가파이불가탈기견) 士可殺而不可奪其志(사가살이불가탈기지).]”라고 하였다.

 

선비의 이런 진리의 길, 정의로운 길을 향한 굳건한 기상을 우리는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신임사화 때 숙종대왕의 고명(顧命)을 따라 앞장서서 영조대왕을 옹립하려하다가 권력욕에 눈이 먼 흉인(凶人)들의 모함으로 참수형을 당한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아래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갔으나, 그는 부활하여 영조·정조의 부흥시대를 여는 기폭제(起爆劑)가 되었고 나아가 조선 후기에 국가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다.

 

허국단심재(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음이로다.

 

그는 자신과 두 아들들의 목숨을 바쳐 나라의 정의(正義)와 기강과 윤리를 지켰으니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인욕(忍辱)하면서 오로지 진리와 정의의 길과 하늘의 광명(光明)만을 바라보고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 간 것이다.

 

한편 우리는 히틀러 시대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의 불꽃같은 인생에서도 진리를 향한 굳건한 삶을 발견할 수가 있다.

 

1933년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서 독일교회는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면서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듯이 지금 현재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히틀러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단지 히틀러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송을 통해서 히틀러는 독일국민들을 히틀러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한다고 경고하는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었고, 결국 방송은 중단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나치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원고를 신문에 게재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나치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끝까지 히틀러의 불의(不義)의 정치에 저항하다가 결국 사형 당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진리에 살고 진리에 죽은 모범적인 기독교인의 표상(表象)으로 부활하여 살아 숨 쉬고 있다.

한포재 이건명 선생 간찰

2025. 3.18.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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