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라
“대체로 사람의 질병(疾病)은 병이 발생하는 날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근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치료하는 방법에 있어 병의 근원을 먼저 다스리지 않고 지엽(枝葉)적인 부위를 치료하려 든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효과를 보기 어렵고 묵은 뿌리와 썩은 풀뿌리가 충화(沖和, 부드럽게 조화함)한 기운만 손상시킬 따름입니다. ··· 마음은 한 몸의 주재(主宰)이자, 모든 변화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한번 평정심(平靜心)을 잃게 되면 다만 온몸이 뒤집어지고 만사(萬事)가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의 근원이 또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병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대체로 마음은 관직으로 치면 군주(君主)에 해당하니 사물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지 명령을 받지는 않으며, 그 쓰임은 불과 같으니 정적(靜的)인 것을 필요로 하고 동적(動的)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1700년 숙종 26년 10월, 병산 이관명 선생, ‘옥당에서 경계를 진달하는 차자(玉堂陳戒箚)’ 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언제나 평정심(平靜心)을 유지 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건대, 그 길은 오로지 평소에 나의 식견(識見)을 넓힘과 아울러 인생관·가치관·역사관을 정립(正立)하고 내 마음을 수양(修養)함으로 고매(高邁)한 인격과 품성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 그리하자면 우리는 인류역사상 불멸의 성인(聖人)·현인(賢人)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을 본받는 성학(聖學)에 몰두(沒頭)해야 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이 성학(聖學)에 대하여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어 우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맑고 바르게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體)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慾)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효종4년 1653년 7월 2일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건의문 중에서>
압박과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보낸 봄 나무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압박과 고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크게 성장할 수 없고, 눈앞에 다가온 기회운(機會運)조차도 잡지 못하게 된다. 압박과 고난 중에도 하늘의 섭리(攝理)를 따라 진리의 길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할 때 비로소 밝고 좋은 길이 열리는 법이다. “우리는 압박을 받을 때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겁쟁이들이다. 당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같은 압박을 받아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충돌이 자신을 연마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당당하게 만드는 압박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2025. 2.22.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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