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고 물러남의 어려움
요즈음 우리나라의 형편에 비추어 보니 나아서고 물러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던 차에, 이에 대한 옛 분의 좋은 말씀이 있어 다시 새겨본다.
진실로 숨어 살 수 있는 덕을 가진 사람은
출세할 수 있는 역량도 있으며,
참으로 출세할 역량이 있는 사람이면
숨어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다.
眞隱者能顯也。眞顯者能隱也。(진은자능현야。진현자능은야,)
- 임춘(林椿) 〈일재기(逸齋記)〉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한국문집총간 제1집)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거나, 반대로 능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인사(人事)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비판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능력이 있을 줄 알고 발탁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올라가서는 형편없는 성과를 내거나, 반대로 별 볼일 없을 줄 알고 임명을 꺼렸던 사람이 의외의 성과를 내서 임명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잘못된 인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하(西河) 임춘(林椿)선생의 윗글은 인사가 아니라, 인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은거하면서 역량을 기르고 있다가, 때가 이르면 세상에 나아가 그 역량을 발휘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조용히 물러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진퇴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재기(逸齋記)>의 주인공 이중약(李仲若)은 어렸을 때부터 도교에 심취하여 항상 마음을 물질 밖에 두고 얽매이는 데에 초탈한 이른바 진짜 은자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학을 연구하여 많은 백성들을 살려냈고 그 공으로 조정에 들어와 높은 벼슬을 하기도 하였으며, 후에는 중국에 건너가 도의 요체를 배우고는 본국에 돌아와 도교(道敎) 사원을 설립하고 설법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주인공에 대해 서하 선생은, ‘도와 함께 행하여 이른바 진정으로 출세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숨고 싶을 때는 (혹은 숨어야 할 때는) 숨어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오고 싶을 때는 (혹은 나와야 할 때는) 나와서 역량을 발휘한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서하 선생은 이 글에 덧붙이기를, ‘벼슬하는 것을 더럽게 여기며 부귀를 천하게 생각하고, 흰 돌을 베개 삼고 맑은 물에 이를 닦는 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파고들며 괴상한 짓을 행할 뿐이니, 그에게 출세할 역량이 있겠는가? 공명심에 사로잡히고 벼슬에 골몰하여 머리에 감투를 쓰고 허리에 관인(官印)을 차고 다니는 사람은 세력을 얻기 위하여 허덕이며 이익을 쫓아다닐 뿐이니, 그에게 숨어 있을 덕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고상한 척하는 거짓 은자들과, 안달복달 해가며 권력에 붙어 이익을 탐하는 속물들을 싸잡아 비판한 셈입니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커다란 화두이고 고민입니다. 나아갈만할 때 나아가고 물러날만할 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기를 쓰고 그 자리에 오르려 하다가 정작 자리에는 올라보지도 못하고 패가망신만 하고 말거나, 오르기는 올라도 그 과정에서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는 문제가 생겨서 물러나야 할 때 바로 물러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사방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여 마침내 온갖 더러운 치부가 만천하에 다 까발려진 다음에 등 떠밀려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서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하겠습니다. 서하 선생 말씀처럼 진실로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 있어 이렇게까지 구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11. 9.15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백강 이경여 선생의 부친이신 동고 이수록 선생은 광해군이 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패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패륜적 행태가 심각하자 일체의 벼슬길을 사양하였고 백강 선생 자신도 벼슬길에서 물러나셨는데, 이후 인조반정후에 이미 돌아가신 동고 선생은 영의정에 추증되시고 백강 선생은 다시 부름을 받아 공직과 백성에 봉사하시며 훌륭한 봉사와 모범의 삶을 살아갔다.
이분들은 투철한 선비 정신으로 부자가 한 몸처럼 이처럼 물러남의 선택을 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들에게는 무엇보다 바른 인생관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은 이분들이 살던 시대에는 알지 못하던 심오하고 복된 진리의 말씀들도 우리들은 더 넓게 접하고 배울 수가 있으니, 더욱 정진하여 참으로 복된 인생을 누려가도록 해야겠다.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의 목적에 따라 각 사람에게 모두 달리 능력 등을 부여하시고 마지막에 하나님은 많이 준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며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즉 만인은 가진 능력 등에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헛된 세상의 평가에 휘둘러 사사로운 욕심으로 자리를 탐하다가 결국은 참담한 일을 당할 것이 아니라, 천국 즉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오직 인격을 갈고 닦아 성인의 품성을 기르는 데에 무엇보다 힘써야한다. 아울러 이 세상에 봉사하고 사랑을 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능력 등을 갈고 닦는 일에도 소홀이 함이 없어야할 것이며, 사심 없이 공익을 위해 나아가고 공익을 위해 물러설 줄 알아야한다.
주목할 점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만큼 환란이 닥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 부담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런 인격적 수양이 되지 않았으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안 된다. 앞에 언급한 백강 이경여 선생은 정승의 신분이 되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가면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하며 초연하게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2018. 8.24.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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