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치욕을 딛고 광복의 길로

Abigail Abigail 2025. 8. 25. 00:46

치욕을 딛고 광복의 길로

·················································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

 

“서쪽(청나라)에서 온 소식이 언사가 극히 패만(悖慢)하니 이는 병자호란 이후로 보기 드문 치욕입니다. 예로부터 약한 나라가 당하는 능멸과 강한 나라가 질책한 말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마는, 간혹 그 수치를 감추고 참아서 마침내는 광복의 대업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 아! 삼전도의 치욕이 있은 지도 벌써 50년이 되었습니다. 요사이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인지도 거의 알지 못하니, 오늘날의 모욕이 혹시 하늘의 뜻이 그 화란을 준 것을 뉘우쳐서, 우리나라를 놀라게 하고 우리 전하를 부추겨서 떨치고 일어나는 공을 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지요? 효종대왕의 사무친 아픔을 마음속에 두었다가 하신 전교를 신 이이명이 언젠가 연중(筵中)에서 전하를 위하여 외었습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이것으로써 뜻을 삼으신다면 무슨 일인들 이룩하지 못하겠습니까?”

 

위는 1686년(숙종 12년) 5월 1일 소재 이이명 선생이 숙종임금에게 올린 상차문(上箚文)으로 병자호란 삼전도의 치욕을 잊지 말고 경계하자는 내용으로, 여기서 언급한 “효종대왕의 사무친 아픔을 마음에 두었다가 하신 전교”란 효종대왕이 1657년(효종 8년) 5월 5일 백강 이경여 선생에게 내린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 <사무친 아픔이 가슴에 맺혀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이란 비답(批答)의 말씀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비답(批答)의 내력과 의미를 살펴보자.

 

“과인(효종대왕)이 좋아하는 것을 끊고 밤낮으로 몸 달아 하면서 조그마한 효과라도 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말단적(末端的)인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실로 가슴에 심한 한이 서려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寡人絶嗜欲, 而夙夜焦身, 欲見小利者, 非不知其爲末務, 而誠以至痛在中, 有日暮道遠之意故也.]”

 

위는 1657년(효종 8년) 5월 5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간언(諫言)의 수용과 폐단의 제거를 청하는 글을 올리자 효종대왕이 주신 비답(批答) 중에 있는데, 이때는 병자호란으로 효종대왕과 백강 선생은 모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풀려난 지 겨우 수년이 경과한 시점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키워서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으려는 북벌(北伐)의 결의가 대단하였기 때문에 효종대왕이 이런 말씀을 한 것이다.

 

효종대왕의 이 비답을 훗날 소재 이이명 선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숙종대왕에게 상언(上言)한 바 있다. “과인(효종대왕)이 공리(功利, 功名과 利慾)가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참으로 사무친 아픔이 가슴에 맺혀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孝廟批曰: 非不知功利之爲非, 而誠以至痛在心, 日暮途遠, 故不得不爾也.”<숙종 12년 1686년 4월 22일 소재 이이명 선생이 상언(上言)한 말씀 에서>.

 

이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 말씀을 기념하여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여덟 글자로 줄이고 써서 백강 이경여 선생의 아들 서하 이민서 선생에 주었는데 이후 백강 선생의 손자인 소재 이이명 선생이 이 여덟 글자를 바위에 새겨 백마강변 대재각(大哉閣) 안에 세우니 이것이 오늘날의 대재각 각서석(刻書石)으로, 이후 이 여덟 글자는 북벌계획(北伐計劃)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통용되어 왔다.

 

이에 우리는 이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여덟 글자를 대할 때 교훈으로 삼아야 할 바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국가의 계획 등 큰 계획을 세워 일할 때에는 반드시 계획을 따라 차분히 실행할 일이지 급하고 들뜬 마음에 몸 달아 하면서 조그마한 효과라도 보고자 하는 것과 말단적(末端的)인 일을 서둘러 도모하는 것과 그리고 개인적인 공명(功名)과 이욕(利慾)을 멀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북벌계획으로 말하자면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이후 3개월 후 돌아가시고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시던 효종대왕도 2년 후 젊은 나이에 아쉽게도 급서(急逝)하시므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니 후대의 우리가 배울 바가 많다.

 

둘째, 청나라를 포함한 중국으로 부터 당했던 길고 긴 고난과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당한 것은 잠간이지만 중국에 당한 것은 너무나도 긴 세월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대부분이 일본인들과는 달리 우리를 지난날의 속국, 조공이나 바치는 나라의 사람들로 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장래가 없다.

 

2025. 8.25.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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