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居敬) 궁리(窮理)의 학술로써 몸에 증험하고
거경(居敬) 궁리(窮理)의 학술로써 몸에 증험하고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크게 경각심을 가지고 거경(居敬) 궁리(窮理)의 학술로써 몸에 증험하고 인심(人心) 도심(道心)의 싹으로써 더욱 그 기미를 살펴, 마치 샘물이 흘러가고 불이 타들어가듯 확충하고 마치 싸움에 이기고 공격하여 탈취하듯 제대로 제거하심으로써 의리가 항상 밝아 물욕(物慾)이 물러가 그 명을 듣게 하소서. 또 자주 유신(儒臣)을 접하여 조용히 강마(講磨)하고 말을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한편, 치도(治道)의 잘잘못과 사방의 이해도 다 말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임금과 신하 사이에 위아래가 마치 일반 가정의 부자간의 정처럼 통하게 하되, 만일 올바른 이치를 어기고 임금의 뜻에 영합하거나 이익을 앞세워 백성을 병들게 하는 말이 있거든, 통렬히 제재를 가하고 장황하게 하지 못하게 하여 국체(國體)를 높이고 다스리는 법을 바루소서.
송(宋)나라 신하 정이(程頤)가 말하기를 ‘사람의 감정 중에 쉽게 폭발하여 가장 억누르기 어려운 것은 성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날 때에 문득 그 노여움을 잊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관찰하면, 밖에서의 유혹은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 이쯤 되면 도(道)의 경지가 반절은 넘어간 것이다.’ 하였고, 사양좌(謝良佐)는 말하기를 ‘극기(克己) 공부는 모쪼록 성품이 편벽되어 이기기 어려운 곳을 향해 이겨 나가야 된다.’ 하였습니다. 여조겸(呂祖謙)은 젊었을 때 성품이 거칠고 사나웠는데, 《논어(論語)》를 보다가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두텁게 책망하고 남에게는 적게 책망한다.’는 데에 이르러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생각이 일시에 평탄해져서 죽을 때까지 이런 병통이 없었습니다. 다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분한 생각을 징계하는 데 더욱 뜻을 두소서. 신들은 전하의 결점이 무엇보다도 여기에 있다고 망령되이 여겨지는 까닭에 거듭거듭 말씀드리면서 감히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조9년 (1631년) 10월3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 등의 상차문(上箚文)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