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훈(遺訓)과 성헌(成憲)을 따르라

Abigail Abigail 2021. 11. 29. 12:30

유훈(遺訓)과 성헌(成憲)을 따르라

 

예로부터 국가가 안정된 정치 속에서 오랜 세월을 면면히 이어간 경우는 그 자손들이 조종(祖宗)의 유훈(遺訓)을 잘 지켜서 감히 실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반대로 잠시 얻었다가 바로 빼앗겨서 국가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 경우는 선세(先世)의 유훈이 있어도 자손들이 그것을 멸시하여 버리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체재를 계승하고 문덕을 지켜가는 훌륭한 임금이 행여 어길세라 조심조심 성헌(成憲)을 따르면서 감히 자만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가 생각건대, 상(商) 나라 탕왕이 박(亳) 땅의 왕업을 열어놓으니 6, 7명이나 되는 훌륭한 임금이 계승하였고, 문왕과 무왕이 주(周) 나라의 왕업을 마련해 놓으니 성왕과 강왕은 그것을 잘 지켜왔고 선왕(宣王)은 중흥시켰다. 이렇듯 상 나라와 주 나라의 사직이 수백 년에 달했지만 조종(祖宗)이 남기신 교훈을 잘 지키는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열성(列聖)께서는 성신(聖神)으로 서로 계승하여 제왕의 도를 천양함에 있어서 그 덕이 여러 임금들보다 높았고 사물의 변화하는 양상을 꿰뚫어 지혜가 만물에 미쳤다. 행동거지와 호령을 내리는 것이 모두 지극한 이치요 지극한 도리였다.

 

자손들로 하여금 이 점을 생각하게 해서 조종이 정사에 근면하던 모습과 강학하던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을 가다듬어서 정치에 반영하는 도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조종이 구언(求言)하던 모습과 납간(納諫)하던 모습을 보게 되면 사견을 버리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성실히 보살펴야 한다는 훈계를 체득하게 되면 반드시 천명과 인심의 사이에 신중을 기하게 되고, 어진 자는 등용하고 사악한 자는 물리쳐 버리는 계책을 법으로 삼는다면 군자와 소인의 정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설 것이니, 어느 것을 끌어다가 활용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대왕께서는 타고난 용맹 지략과 날로 치솟는 성인다운 공경으로 삼척검(三尺劍)을 들고 큰 공로를 세워 왕업을 처음으로 열어놓았고 임금의 자리에 올라 관대한 정치를 펴서 후손에게 넘겨주셨습니다.

 

태종대왕은 성덕이 몸에 있으셔서 사물에 앞서 그 기미를 살피셨고, 난리를 무력(武力)으로 평정하여 종묘 사직을 다시 안정시켰으며, 문덕(文德)으로 태평시대를 이루어 예악과 형정(刑政)이 사방에 달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세상에 보기 드문 임금으로 가능성이 있는 시기를 당하였으니 우뚝 솟은 공렬과 빛나는 글은 그 제작이 삼대(三代)에 앞서며 인(仁)으로 감화를 시키고 의(義)로 연마를 하시니 그 교화가 군생(群生)에 흡족하였습니다. 문묘(文廟)를 계승함에 미쳐서 마련해 두신 법을 살펴서 잘 지켰습니다. 요(堯)와 순(舜)이 주고받은 것은 모두 유정유일(惟精惟一)의 사상을 가지고 전수한 것이며, 우(禹)와 고요(皐陶)가 서로 문답한 것은 모두 어느 때 무슨 일이든지 천명을 경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천순(天順)원년(1452년 세조2년)12월 신숙주(申叔舟) 등이 쓴 국조보감 총서(總敍) 서문(序文)과 전문(箋文)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