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시비에는 천하의 공의(公義)가 있는 것이니
천하의 시비에는 천하의 공의(公義)가 있는 것이니 ~ 백강 이경여 선생
무릇 천하의 시비에는 본디 천하의 공의가 있는 것이니, 일시적인 논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승정원일기 > 인조 16년 무인 > 9월 6일 인조 16년 무인(1638) 9월 6일(을축) 맑음
어미의 신병 등의 이유로 본직과 겸직을 체차해 줄 것을 청하는 병조참판 이경여의 상소
병조참판 이경여(李敬輿)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하의 절의로는 죽어 마땅합니다. 베를 짜는 과부가 북 실 끊어질 것은 걱정하지 않고 주(周)나라를 염려한 것과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 몸 둘 곳이 없을까 근심한 것은 또한 평범한 사람의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양심에서 나온 것인데, 오늘날 대소 조정 신료로서 임금에게서 밥을 먹고 임금에게서 옷을 입으며 사대부로 불리는 자이겠습니까.
미천한 신은 밝으신 성상을 만나 10년간 경연에 참여하고 세 번 번신(藩臣)의 임무를 맡아 중외(中外)의 직책을 역임하였는데 털끝만큼도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였습니다. 높으신 은혜가 특별히 도타워 참으로 남달랐으니, 신이 이 한 몸 다 바쳐 일하더라도 만에 하나도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신은 일찍 아비를 잃고 가까운 친척도 없어 혈혈단신으로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신은 형제가 없어 홀로된 어미를 혼자서 봉양하였는데, 지금 나이가 73세입니다. 누차 참화를 만나 질병이 끊이질 않아 기력이 다 떨어져 오래도록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작년 변란 때는 신을 염려하느라 해도(海島)에 피난 가 있는 동안 음식은 들지 않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데 시사(時事)가 조금 안정된 뒤 그것이 고질이 되어 신이 영남(嶺南)에 있을 때 갑자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신이 은전을 입어 체차되어서 어미 곁으로 돌아가 겨우 목숨을 구해 신의 어미가 지금까지 잔약한 목숨을 보전하고 있으니, 천지와 같이 생성해 주는 은혜를 이미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큰 병을 겪은 터라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 정신이 혼몽하고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숨이 미약합니다. 이러한 지경이니 자식으로서는 차마 하루라도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사의 어려움과 근심이 날로 심해지니 물러나 거처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고, 어미의 병환이 이러하니 버려두려고 해도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신의 이 한 몸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임금을 섬기고 어버이를 섬기는 세월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불충과 불효는 어느 하나도 용납될 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신은 군주와 어버이에 대한 생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신의 마음은 이미 슬프다고 하겠고 신의 상황 또한 낭패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신이 은혜로이 말미를 받아 돌아가 병든 어미를 만났으니, 감격스럽고 사정(私情)으로는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멀리서 성상을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지금까지도 여전하니, 지난날 상소하여 면직을 청한 것이 어찌 신이 원하는 바였겠습니까. 저의 진심이 성상께 전달되지 않아 형식적인 사직이 되어 버렸고 겸대한 직임도 개차되지 못한 채 새로운 명이 계속 내려오니, 신은 진실로 감격스럽지만 너무나도 두렵고 염려스럽습니다. 성상의 은혜가 융숭할수록 신의 죄는 더욱 중해지니, 신은 영광이 두려움이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이렇게 청을 올리니, 이는 또한 성상의 부모와 같은 사랑을 믿고 주륙의 형벌을 잊은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보니, 신은 일찍이 남한산성에서 전 판서 김상헌(金尙憲)과 전 참판 정온(鄭蘊)이 죽음의 문턱에서 요행히 살아나 죽으려는 뜻을 이루지 못한 정황을 목도하였는데, 마음에 항상 애처롭고 안타까웠고 스스로 돌이켜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과거 옥당(玉堂)에 있었을 때 교지에 응하여 차자에 진술하기를, ‘살았더라도 스스로를 깨끗이 하여 인륜을 부지하였을 경우에는 너무 심하게 박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등의 말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의견은 같지 않아 지금까지도 김상헌을 공격하고 배척하기를 마치 꽉 막힌 소인을 공격하듯이 하여 위리안치의 벌까지 청하였습니다. 무릇 천하의 시비에는 본디 천하의 공의가 있는 것이니, 일시적인 논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먼저 신의 죄를 바로잡아 앞장서 망언을 해 대는 자의 경계로 삼으시어 저의 분수를 편안하게 해 주시고 사람들의 말에 부응하소서. 그렇게 하시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하니, 본직만 체차하라고 답하였다.
[주-D001] 대소 :
원문은 ‘缺’인데, 한국문집총간 87집에 수록된 《백강집(白江集)》 권8 〈사병조참판소(辭兵曹參判疏)〉에 ‘大小’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2] 10년간 :
원문은 ‘缺’인데, 위 자료에 ‘十年’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3] 높으신 …… 남달랐으니 :
원문은 ‘隆恩 缺 出尋常’인데, 위 자료에 ‘隆恩異渥 迥出尋常’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4] 신이 …… 없어 :
원문은 ‘非臣隕首糜骨 缺 親黨’인데, 위 자료에 ‘非臣隕首糜骨所可仰報萬一 且臣早失嚴父 又無親黨’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5] 신은 …… 있으니 :
원문은 ‘缺’인데, 위 자료에 ‘第臣終鮮兄弟 獨奉偏母 年今七十有三 累遭慘禍 疾病連綿 氣力澌敗 長在床席 上年變亂 以臣爲念 海島流播之中 廢食涕泣 時事稍定之後 添成痼疾 臣在嶺南 奄至危境 臣蒙恩遞歸 僅得救活 臣母尙保殘喘’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6] 그러나 …… 혼몽하고 :
원문은 ‘而 缺 潰潰 有似烟霧中人’인데, 위 자료에 ‘旣經大病 昏昏憒憒 有似煙霧中人’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7] 신은 …… 생각으로 :
원문은 ‘臣係 缺 君親’인데, 《백강집》 권8 〈사병조참판소〉에 ‘臣係戀君親’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8] 신이 …… 받아 :
원문은 ‘臣諴恩 缺’인데, 위 자료에 ‘臣茲蒙恩暇’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09] 너무 …… 합니다. :
원문은 ‘不定 缺 薄太甚’인데, 위 자료에 ‘不宜厭薄太甚’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주-D010] 본디 …… 아닙니다 :
원문은 ‘自有 缺 非一時論議之所能易置 缺’인데, 《백강집》 권8 〈사병조참판소〉에 ‘自有天下之公議 非一時論議之所能易置也’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하운하 (역) | 2007
승정원일기 66책 (탈초본 4책) 인조 16년 9월 6일 1638년 崇禎(明/毅宗) 11년
金尙憲 등을 攻斥하며 安置律을 청하기까지 하니 一時의 論議로 是非를 易置할 수 없다는 李敬輿의 상소
규장각 원본국역
○ 兵曹參判李敬輿疏曰, 伏以, 國事到此, 臣節當死, 婺婦之恤宗周, 杞人之憂天傾, 亦出於匹夫匹婦不能自已之良性, 今日缺廷臣, 食君衣君, 以士大夫爲名者乎? 臣以螻蟻之賤, 遭逢聖明, 缺經幄, 三忝藩服, 歷敭中外, 報蔑毫絲, 隆恩缺出尋常, 非臣隕首糜骨缺親黨, 弔影無依, 缺天地生成之恩旣給, 而缺潰潰, 有似烟霧中人, 奄奄氣息, 若將垂盡。人子至此, 不忍一日離側, 艱虞日甚, 退處無義, 親病若此, 欲捨不忍, 臣將此一身, 若何爲計? 事君事親, 日有長短, 而不忠不孝, 罪難逃一, 臣係缺君親, 彷徨中路, 臣之情理, 旣云戚矣, 臣之事勢, 亦可謂狼狽矣。臣諴[含]恩缺歸見病母, 感祝私情固幸, 而淸渭終南戀闕, 怵惕之心, 到今耿耿, 頃日露章乞免, 豈臣所欲? 誠未格天, 事歸飾讓, 兼帶未改, 新命繼降, 臣誠感激, 惶悶亦切, 聖恩愈隆, 臣罪彌重, 臣以榮爲懼, 措躬無地。百爾思量, 計無所出, 不得不更此申請, 是亦恃父母之愛, 而忘鈇鉞之誅者也。且念臣曾在南漢, 目見前判書金尙憲, 前參判鄭蘊, 垂絶幸生, 求死不得之狀, 心常憐歎, 自顧慙愧。向忝玉堂, 應旨陳箚, 至以生而自靖, 扶持人紀, 不定缺薄太甚等語爲辭, 不圖人之意見不同, 到今攻斥尙憲, 如攻索性小人, 之[至]請安置之律也。凡天下之是非, 自有缺非一時論議之所能易置缺伏乞聖慈, 先正臣罪, 以爲首發妄言者之戒, 以安愚分, 以謝人言, 公私幸甚。答曰, 只遞本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