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 대하여
복수는 남의 것
[번역문]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피살당하여 관가에 고발하였다면, 누군들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곧장 원수를 찔러죽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건의 진상에 허실과 경중의 구분이 있기 때문이니, 법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법의 판결이 나온 뒤에도 복수를 핑계 삼아 제멋대로 죽인다면, 훗날의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원문]
夫人子之以其父被殺發告者, 孰不爲之腐心痛骨, 直欲剚刃於讐人. 而有所不敢者, 以其獄情之有虛實輕重之分, 而惟俟公法之决處耳. 若於公法已決之後, 諉之以復讐, 許之以擅殺, 則來後之弊, 可勝言哉.
- 조인영(趙寅永, 1782~1850), 『운석유고(雲石遺稿)』 권8 「의(議)」, 「살인 사건에 대해 복수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논하다[擬殺獄復讎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말로,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가해자에게 똑같이 되돌려 줌으로써 징벌하는 복수의 원칙이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원칙이었다.
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조선 8조 금법의 첫머리에 놓인 ‘살인자사(殺人者死)’,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 역시 복수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복수해 주고, 이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사회는 법질서가 미비하고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국가가 범죄자를 일일이 찾아내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고대 국가에서는 법질서와 행정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적인 복수를 어느 정도 허용하였다. 쉽게 말해 가족이나 친구가 누군가에게 살해되면 내가 가해자를 찾아내서 죽여도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행위를 금지하기는커녕 장려하기도 했다.
복수는 경전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예기(禮記)』에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같은 세상에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같은 세상에 살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살고 싶다면 아버지의 원수를 죽여야 한다.
공자도 복수를 정당한 행위라고 보았다.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부모의 원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의 대답은 이렇다. “잘 때는 베갯맡에 무기를 놓아두고, 같은 세상에서 살면 안 된다. 길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발언이다. 가족 윤리를 중시하는 유교적 관점에서 부모의 원수에 대한 복수는 의무에 가까웠다.
유교 경전에 실려 있는 내용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당시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윤리라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복수의 윤리 역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고대 사회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법치주의가 확립되면서 사적인 복수는 점차 금지되었다.
사적인 복수를 금지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법치국가에서 모든 형벌은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면 법질서가 무너진다. 그리고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법,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면 사회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도 사적인 복수를 엄격히 금지했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함부로 죽이면 처벌을 받는다.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지만, 사람을 죽인 죄를 적용하여 중형을 내린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사적인 복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드물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십 년 동안 산속에서 검술을 익혀 원수를 갚았다는 따위의 복수담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라. 『흥부전』에서 흥부가 놀부에게 복수를 했는가. 『토끼전』에서 토끼가 거북이에게 복수를 했는가.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뺑덕어멈에게 복수를 했는가. 중국이나 일본 같으면 복수를 하고도 남을 상황인데, 통쾌한 복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 고전소설에서 복수는 반드시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춘향전』에서 변 사또는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에게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사적인 앙갚음이 아니다. 공권력에 의한 복수이다.
『장화홍련전』도 마찬가지다. 장화 홍련 자매는 계모와 이복동생에게 죽임을 당한다. 장화 홍련은 귀신이 되어 사또를 찾아가 복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부임하는 사또마다 귀신을 보고 놀라 죽는 바람에 줄초상이 이어진다. 그렇게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으면 계모를 찾아가 직접 복수할 것이지, 왜 애꿎은 사또를 놀래켜 죽게 만드는가.
장화 홍련이 사또를 찾아간 이유는 사또가 공권력을 대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장화 홍련이 계모에게 직접 복수를 했다면 이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조선 사회의 윤리에 따르면 복수는 엄연한 가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장화 홍련은 공권력에 의한 복수를 바랬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는 복수란 모름지기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가 복수를 공권력에 의지한 이유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특수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중국은 워낙 넓어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고, 봉건제를 채택한 일본은 통치가 일원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의 무사도는 복수를 숭상한다. 복수는 무사의 의무였다.
그러나 조선은 다르다. 전근대 세계 어느 곳에도 조선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행정력이 미치는 나라는 없었다. 공권력이 사회 곳곳에 빈틈없이 미치고, 공정하게 기능한다는 신뢰가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적인 복수를 할 이유가 없다.
사적인 복수가 다시 성행하고 있다. 보복 운전은 빙산의 일각이다. 층간 소음에는 소음으로 복수하고 학교 폭력에는 폭력으로 복수한다. 흡사 서부극에서 보는 것 같은 복수 혈전이 펼쳐지고 있다. 공권력이 부재한 개척시대의 미국 서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3분 거리에 경찰이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적인 복수가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수가 정당한 행위라는 그릇된 관념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복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공권력이 할 일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공권력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사적인 복수를 막고자 한다면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는지, 그리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공권력이 신뢰를 잃은 사회에서는 사적인 복수를 막을 수 없다.
장유승 글쓴이 :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주요저역서
- 『일일공부』, 민음사, 2014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단독)
- 『정조어찰첩』, 성균관대 출판부, 2009(공역)
- 『소문사설 -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휴머니스트, 2011(공역)
- 『승정원일기』(공역), 『월정집』(공역)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