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인간관계, 행복으로 가는 지혜
원활(圓滑)한 인간관계, 행복으로 가는 지혜
타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바람직하게 맺고 이를 유지 발전시키거나 또는 잘 정돈하여 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여 사실상 우리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한 말 중에 ‘실존적 교제’란 말이 있다. 실존적 교제는 순수한 혼(魂)과 혼이 아무런 이권이나 거래관계가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일컫는다.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온갖 만남이 있다. 그런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사람다워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위에는 그릇된 만남이 너무 많다. 그런 잘못된 만남의 핵심은 서로 욕심을 품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만남이다. 그런 만남에서는 서로가 상처받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지치게 된다.
그러나 아무런 요구도 이권도 없이 마냥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은 서로를 치유하여 주고 행복하게 이끌어 준다. 인간성이 매몰되어가는 오늘날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실존적 만남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하겠다.
인생살이를 오래 살아 본 사람일수록 산다는 것은 곧 만남이라는 것을 체득(體得)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하여 자신과 이웃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실존적 만남들을 통하여 자신이 성숙하고 행복해지며 동시에 이웃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다.
여기에서 다양한 고전들에 있는 이에 관한 좋은 조언(助言)들을 찾아 살펴보고, 되새겨 보아 다짐을 새롭게 하고자한다.
1. 양보하는 마음자세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채근담(菜根譚)은 먼저 상대에게 일보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정(人情)은 변하기 쉽고 세상을 사는 도(道)는 엄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곳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길을 양보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서도 조금은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좁은 길을 갈 때는 한발 물러서서 길을 양보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일부분을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세상살이의 비법이다 즉 양보의 미덕이다.”
성경(Bible)은 채근담에서의 양보의 수준을 너머서 하나 되는 마음, 낮아지는 마음, 돌보는 마음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중요하게) 여기고” (빌립보서 2장2-3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언 18장12절)
그러나 채근담에서는 단순히 양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확실한 계산이 있다. 예를 들면, “종신(終身)토록 양보해도 백보(百步)를 넘지 아니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는 양보해서 잃는 것보다 그 반대급부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놀라운 계산이 숨어 있다. 일보후퇴는 일보전진을 위한 전제인 것이다.
이런 내용은 성경말씀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고(마태복음 22장39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케 하라(빌립보서2장4절)고 하였다.
2. 이웃에 관대(寬大)하고 사랑하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될 수 있는 한 이웃에 관대(寬大)하게 대하는 편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의 이익이 되어 되돌아온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조정에서 이런 관대함의 경지를 넘어 내 몸처럼 백성을 사랑하라는 말을 하였다.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차자를 올리기를, “ ~~ 내 몸이 다칠까 조심하듯 윗사람의 것을 덜어서 아랫사람을 돕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요령이고 ~~” 효종 3년(1652년) 10월 25일 상차문 중에서
성경도 관대함을 넘어 우리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웃에 관대함으로 당하는 고통이 있더라도 그 아픔을 참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 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마태복음 5장39-40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장14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sympathetic)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辱)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네가 복을 유업(遺業)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장 8-9절)
3. 유혹해오는 욕심(慾心)을 버려라
채근담은 ‘무슨 일이든 여유를 갖고 조심스럽게 사양(辭讓)하면서 대처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은 물론 천지의 신(神)들도 위해(危害)를 주거나 재앙(災殃)을 내리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사업도 공명(功名)도 철저하게 이익만을 추구만 할뿐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안으로부터 발목을 잡히든지, 밖으로부터 붕괴를 당하게 되든지, 어쨌든 실패를 면할 수 없다.
또 실패의 책임은 공유(共有)하여야 하지만, 성공의 보수(報酬)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편이 좋다. 그것까지 공유하려하면 반드시 서로 사이가 벌어진다.
明心寶鑑의 安分篇에서는 “ 경행록에 이르기를, 만족함을 알면 가히 즐거울 것이요 탐욕스러움에 힘을 쓰면 곧 근심이 되느니라. <景行錄(경행록)에 云(운) 知足可樂(지족가락)이오 務貪則憂(무탐즉우)니라>”고 하였다.
성경은 우리의 욕심을 버리도록 “너희는 유혹의 욕심(慾心)을 따라 썩어가는 구습(舊習)을 쫓는 옛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心靈)으로 새롭게 되어”(에베소서4장22-23절)라고 말하고 있다.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재난극복을 위한 상차문(上箚文) 중에서 이르기를 ”天地간의 인물에는 저마다의 분한(分限)이 있으니 분한 밖에 지나치게 바라서는 아니 된다. 마구 써서 없애는 것이 많고 보면 하늘에 죄를 얻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위의 말씀들과 그 취지의 상통하는 바가 매우 크다.
4. 겸허(謙虛)속에 있는 계산은 버려라
우리는 흔히 남에게 겸허(謙虛)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속으로는 주판알을 튕기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겸허(謙虛)속에 있는 계산은 어디까지나 비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밖으로 드러나면 완전히 효과를 잃는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경우에 자선(慈善)이라도 베푸는 듯 하는 마음을 나타내거나 보답(報答)을 기대하는 듯 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을 나타내지 않으면 비록 쌀 한 되를 주어도 백만석(百萬石)의 가치가 있다.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에 효과를 계산하거나 보답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하면 비록 천금(千金)을 주었다 할지라도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성경은 계산이 아니라 우리 내면세계가 예수의 품격을 닮아 스스로 겸허, 겸손하고 온유(gentle)하며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5.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라
유해(有害)한 인간을 배제하려 할 때에도 도망갈 길을 남겨 두어야 한다. 도망갈 길 까지 막아 버리는 것은 쥐구멍을 막아서 퇴로(退路)를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면 중요한 것까지 다 갉아 먹어 버린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물게 된다.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34절)
부하를 꾸짖을 때에는 정신(情神) 못 차리게 무조건 야단치기 보다는 상대에게도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타이르는 편이 좋다. 공자는 “사람을 가볍게 꾸짖을 때 원한(怨恨)은 멀어진다.”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분노를 드러내지만, 지혜로운 자는 절제한다.” (잠언 29장11절)
“후한 사람은 잘되고 남을 기분 좋게 하는 자는 자기의 기분도 좋아진다.” (잠언 11장25절)
6. 도량(度量)과 포용력(包容力)이 필요하다
세상을 사는 데에 지나치게 결벽(潔癖)해서는 안 된다. 불결함이나 추악함 까지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도량(度量)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좋고 싫음의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어떤 타입의 상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包容力)이 필요하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8절)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은혜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친밀함과 상호존경과 자유 속에서 성장해가는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에는 이 은혜(Grace)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줍니다.” (베드로전서 4장8절)
7. 적합한 때까지 기다려라
이웃에게 관용적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 에나 서두르지 말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대처 하도록 해야 한다. 너무 서둘러 사정(事情)을 알려고 하면 오히려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는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다가 자연히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 무리하게 다그쳐서 상대의 반발을 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을 도모함에 있어 사람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성령(Holy Spirit)의 열매에는 오래 참음(Patience)이 있다.
동양철학 및 한의학의 기본원리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3가지 관계가 중요한데, 흔히 3재(材)라고 이야기한다. 즉 하늘과 사람과 땅의 관계, ‘天地人’ 이라고 말한다. 이 중 첫 번째 天에 대한 원리는 시(時)이다. 때를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외부환경이 돌아가는 상황을 때를 따라 잘 알아서 때에 맞추어서 일을 해야지만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철이 없다고 말하는 그 연유가 때에 맞지 않는 과일을 먹어서 철이 없다고 얘길 하듯이 때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가 나설 때, 참을 때, 물러 설 때, 말할 때, 행동할 때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8. 자성(自省)하는 자세
자기에게는 엄(嚴)한 태도로 자성(自省)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자기에게 대하여 엄하지 못하면 높은 차원의 인격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자신의 성공 속에서도 자기 과실을 찾아낼 정도로 엄할 필요가 있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그의 家訓에서 후손들에게,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 것이며, 하루에 세 번씩 자기의 잘못이 있나 없나 살필 것을 말씀하였다.
성경에는 남의 눈의 티는 잘 보면서도 자기 눈에 들어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경고하며, 자신에게 엄격할 것을 주문한다.
9. 행복으로 가는 길
중국 송나라 때의 책 선림보훈(禪林寶訓)에 이르기를 “높기로는 道보다 높은 것이 없고 아름답기로는 德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 道德이 있으면 필부(匹夫)라도 궁색하지 않지만 道德이 없으면 천하를 다스려도 원활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註) 선림보훈(禪林寶訓) 중국 송(宋)나라의 승려 종고와 사규(士珪)가 공집(共集)한 것을 정선(淨善)이 편찬한 보훈서. 선림의 도덕이 타락해 감을 걱정한 나머지 군서(群書)를 참고하고 선덕(先德)의 가언선행(嘉言善行)을 수집하여 후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임.
우리가 추구하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갖는 길, 행복으로 가는 길도 크게 보면 이 범주 안에 있다 생각된다. 즉 도덕을 세워 나가고 윤리가 살아 숨 쉬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필부(匹夫)라도 궁색하지가 않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세종대왕의 治世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바탕이기도 하다.
이처럼 윤리도덕을 바르게 세우려면 각자가 마음을 수양하고 인격을 연마함이 근본이다.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은 외면을 장식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을 본받는 생활이다.
예수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표현 된다. 그러나 예수가 직접 말한 그의 마음은 온유(gentle)하고 겸손한 마음이다. 신앙이란 결국 인격(character)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본받고 그의 품성과 인격을 본받는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의 내면세계가 성장하여 갈 때에 참된 행복과 기쁨이 우리를 찾아오게 된다.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은 병자호란 극복의 방책으로 21가지를 말씀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일 먼저 성심(聖心)을 가질 것을 효종대왕에게 주문하였다. (1653년 7월 2일 상차문에서)
“이른바 성심(聖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나아가 우리가 매력적이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양보의 미덕을 넘어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나의 삶을 채워감에 눈을 떠가야 하겠다.
행복으로 가는 문을 다루는 책들은 수없이 많은데, 여기에는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라든지,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라든지, 좋은 취미생활을 개발하라든지, 혹은 주말에는 일과 단절하고 나만을 위해 지내라는 둥 여러 조언들이 있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일상을 행복한 일들로 채우면 채울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결코 나 혼자 만의 기쁨과 행복만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도 없으며, 진정 행복할 수도 없다. 오히려 타인의 행복으로 나의 삶을 채우면 채울수록 내 삶에 윤기가 흐르고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마더 테레사 수녀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삶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누가 더 화려한 삶을 살았는가라고 묻는다면 다이애나를 꼽겠지만, 누구도 다이애나가 테레사 수녀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큰 행복으로 가는 길은 다른 사람의 작은 행복을 빌어주고 돕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만 건의 이혼 케이스를 취급한 시카고의 조셉 사베스라는 판사는 대부분의 부부들이 극히 사소한일을 가지고 이혼까지 서슴지 않는 것에 놀랐다면서 만약 여성들이 아침에 남편이 출근할 때 ‘잘 다녀오세요.’라는 정도의 말만해도 미국에서 일어나는 이혼율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내가 남편의 작은 행복을 비는 것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사회도 지키는 것임을 보여 준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남의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웃의 행복과 즐거움을 내 것으로 삼지 못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남의 행복에 마음이 닫혀 있으면 자신의 잠재력은 열리지를 못 한다.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그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워 왕이 감탄하여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말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2013.12.11.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