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극복하자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극복하자
어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것을 촛불 혁명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웃즈바르트(Bob Goudzwaard)는 그의 저서 “Idols of our Time"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이라고 말하는 경우에 주의할 점이 있다. 어떤 순간에 독재자의 축출, 보다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건설과 같은 정당한 목적의 추구가 우리를 뒤덮어 버리는 배타적인 목표가 되어버려, 하나의 이데올로기, 즉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경직되어 유연성이 전혀 없으며 점차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세력들을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자기가 수용하는 수단에게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생명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 수단이 그 후에는 전제정치(專制政治)를 실시하면서 오히려 인민들과 삶의 환경을 짓밟아 뭉개버리고 말았다.”
인간이 상정(想定)한 정의, 적폐청산이라는 것은 진리의 관점,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있게 마련이다. 고로 우리가 우리의 좁은 생각에서 무조건 정의를 실천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오히려 진리, 하나님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큰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은 원죄(原罪)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으로 모두가 죄인임을 알고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그 기본 바탕이다.
이에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형편에서 다음의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로, 나는 정의구현(正義具現), 적폐청산(積幣淸算)을 “솔선수범(率先垂範)하기”로 바꾸기를 희망한다.
“역사는 차의 백미러와 같다. 거울만 보며 운전하면 도랑에 빠진다. 거울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누가 추월할지 드러낼 뿐이다.” ~ John Lewis Gaddis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목표를 지향하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인간 자체가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듯이 인간의 역사에서 무오류(無誤謬) 무죄악(無罪惡) 만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점점 인간이 살기가 힘든 세상을 만들 뿐이다. 이상(理想)만을 추구한 공산주의의 결말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지난 시절 당시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과거를 바라보아야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 것처럼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한다.
징벌은 공공의 윤리도덕과 질서유지를 위해 철저한 법치주의 아래서 대중(大衆)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만 실시되어야한다. 세종대왕이 허물이 있는 황희 정승의 뉘우침을 보고 등용하시는 덕치(德治)로 큰 업적을 이루신 것을 본받아야한다. 모두가 선한 목적으로 하나로 화합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우리는 ‘편가르기’에 너무 익숙하다. 위정자들이 이를 먼저 유도하는 말을 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대한민국 탄생이후 오일육 혁명 때 구악을 일소한다고 내걸고, 5공화국 때 정의사회를 구현 한다고 내거는 등 어느 정권이고 쌓인 사회악을 없애겠다고 나서지 않은 정권이 없는데, 과연 사회악이 없어졌는가? 지금은 적폐청산을 한다며 수많은 사람을 잡아 가두고 있다. 이 얄팍한 행태가 오히려 다음세대의 적폐청산 대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적폐청산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이다. 솔선수범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며 자발적 참여를 불러온다. 세종대왕의 태평성대는 솔선수범에서 시작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남 탓만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정직은 생명이다. 적폐청산이란 말을 쓰지 말고 오히려 솔선수범하기로 바꾸자!
둘째로는, 덕교(德敎)부터 펴고 형위(刑威)는 뒤로하자고 말하고 싶다.
“살리기 좋아하는 덕(德)을 한껏 지니고 의심스러운 죄는 경한 벌을 주는 등 형벌을 남용하지 말 것이며, 근거 없는 말을 듣지 말고 의논하지 않은 계책은 사용하지 말며, 선대의 훌륭한 선례들을 따르고 세세한 법령들을 만들어 번거롭게 하지 말 것입니다.” ~ 1650년 효종 7년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 중에서 조선왕조실록에서
효종 3년(임진, 1652) 4월.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는, 우선 덕교(德敎)부터 펴고 형위(刑威)는 뒤로 할 것을 청하면서 아뢰기를,
“전하께서 비록 너무 엄하기만 하고 자질구레한 일까지 꼬치꼬치 캐시지는 않지마는 정책 수립과 명령 하달에 있어 너무 절박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전하께서는 형벌과 법으로써 말세를 채찍질하여 무너진 기강을 진작 시키려고 그러시는 것이겠으나, 신의 소견으로는 우선 대본(大本)을 세우지 않고 말무인 형정(刑政)에만 매달리다 보면 날이 갈수록 폐단만 더 생기지 좋은 치적을 남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원대한 계획이 있는 말이어서 듣고 나니 마치 진국을 마신 기분이다. 나도, 세상이 어쩐지 시들부들하고 날이 갈수록 더 퇴폐해져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천인이 귀인을 능멸하는 것을 밤낮으로 걱정은 하면서도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 차라리 기강을 아주 엄숙히 하여 한 시대를 격려함으로써 영영 무너져버리지나 않게 할 것인가 생각했더니, 지금 경이 한, 근본을 먼저 하고 말무는 뒤에 하라는 경계가 바로 더할 나위 없는 말이다. 내 깊이 새겨들으리라.”하고,
이어 의금부와 형조에 명하여 입시하여 심리하게 하였던바 감사(減死), 감등(減等) 그리고 아주 사면된 자가 모두 1백 80여 명이나 되었다. ~ 국조보감 제38권에서
2019. 5.24.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