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소명이 이끄는 삶

Abigail Abigail 2025. 6. 18. 02:30

사충서원 제향, 하남시

소명(召命)이 이끄는 삶

 

경종(景宗, 조선조 20대 임금)이 병이 들어 차도가 없는데 아직 세자를 책봉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현종(顯宗-18대 임금), 숙종(肅宗- 19대임금), 경종, 세 임금의 핏줄이라고는 오로지 나중에 영조(英祖-21대임금)가 된 연잉군(延仍君)뿐이었다.

 

이 당시 조정 재상들 가운데 몽와 김창집 선생, 소재 이이명 선생, 한포재 이건명 선생, 이우당 조태채 선생 등이 후계자가 없음을 깊이 염려하여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자는 발의를 하고 이정린(李廷燐)이 상소문을 올렸다. 이 네 사람을 바로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이라고 칭한다.

 

한편 권력획득의 흑심을 품고 세제 책봉을 반대하던 조태구(조태채와 종형제 간), 최석항, 김일경, 유봉휘 등은 연잉군(延仍君)이 슬기롭고 총명함을 꺼려 큰 옥사(獄事)를 일으켜 노론사대신과 주변의 충신들을 제거하니 이것이 ‘신임사화(辛壬士禍)’였다.

 

이 때 모함에 걸려 귀양을 가 있던 조태채 선생의 막내아들 조관빈이 울며 오촌당숙이 되는 조태구에게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애걸하자, 조태구가 답하기를 ‘자네 아버님이 만약 한 마디만 우리들에게 해준다면 힘써 구해보겠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다른 세 명의 대신들을 배신하고 굴종을 하라는 뜻의 말이었다.

 

조관빈이 아버지에게 그 말을 전하자, 조태채 선생은 아들을 꾸짖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조태채 선생은 사약을 받게 되었으나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다.

 

이후 갑진년(1724년)에 영조대왕(연잉군-延仍君)이 등극한 뒤 억울하게 돌아가신 이들 네 분 충신은 모두 관직이 회복 되었고 나라에서는 ‘사충서원(四忠書院)’을 세워 그분들의 충성과 절의(絶義)를 영원히 기리게 되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고 사람을 해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로우며 한마디 말의 값어치가 천금(千金)과 같고 말로 남을 해치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프다.”<명심보감(明心寶鑑“>.

 

보통 사람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나, 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생명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노론사대신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소명(召命)으로 목숨을 바쳐 충성하였던 것인데, 그로 인하여 나라의 중흥기(中興基)인 영조대왕, 정조대왕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무너져가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중흥기를 도래하게 할 애국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누가 이 나라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소명으로 목숨을 걸 것인가?

 

2025. 6.18.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