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으로

Abigail Abigail 2025. 3. 31. 23:23

병산 이관명 선생 간찰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예(禮)가 없으면 비유컨대 장님에게 안내자(相)가 없는 것과 같으니 갈팡질팡하면서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마치 밤새도록 캄캄한 방 속에서 물건을 찾는 것과 같다.[治國而無禮 譬猶瞽之無相與 倀倀乎其何之 譬如終夜有求於幽室之中.(치국이무례 비유고지무상여 창창호기하지 비여종야유구어유실지중.)]”<仲尼燕居(중니연거)>. “예(禮)와 겸양(謙讓)이 바르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이 없겠지만, 예(禮)와 겸양(謙讓)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예문(禮文)을 어찌하겠는가.[能以禮讓 爲國乎 何有(능이예양 위국호 하유), 不能以禮讓爲國 於禮何(불능이예양위국 어예하).]”《논어》<이인(里仁).

 

여기서 예(禮)라고 하면 하늘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라고 할 것이며, 겸양(謙讓)이란 이런 하늘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를 존중하고 따르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말한다고 본다. 그리고 예문(禮文)이라고 하면 하늘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와 아울러 인간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지혜의 축적을 말한다고 본다.

 

일찍이 병산 이관명 선생은 위의 말씀을 인용하여 숙종대왕에게 정치에 대해 말하기를 「전(傳)에 이르기를 “예(禮)와 겸양(謙讓)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문(禮文)을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리면서 예(禮)가 없으면, 비유하건대 장님에게 안내자(相)가 없는 것과 같으니 갈팡질팡하면서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위에서 아랫사람을 대우하는 것과 아래에서 상대하는 것이 모두 말할 만한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이 없으니, 장님에게 안내자가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신(臣)은 이것을 애석하게 여깁니다. 오직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聖上)께서는 먼저 예(禮)로써 위에서 모범이 되어 여러 신하로 하여금 보고 느끼게 하신다면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병산집(屛山集), 사직하면서 겸하여 소회를 덧붙인 상소(辭職兼附所懷疏)>.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이 살아있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이 없겠지만, 나라에 예가 어그러지고 겸양이 부족하다면 그 나라는 결코 바르게 굴러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이 무너짐으로 나라에 건강한 기강과 질서가 서지 않게 되니 이로써 그 나라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난장판이 되어 결국 망하고 마는 것이다.

 

‘克己復禮(극기복례’)는 내가 가지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대신 남에게 그가 가지고 싶고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대우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누르고 남을 대우하고 상(床)을 차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남에게 상(床)을 차려 줄 때는 예절에 맞게 차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차려 주면 받는 사람은 겸양하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야 그 나라나 조직체는 바르게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은 과연 살아있는가?

 

정치인들은 예(禮)로써 주권자인 국민들을 대해야 하는데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선동을 일삼고 나아가 국가의 기본을 흔드는 전체주의·공산주의사상과 개인탐욕이 넘쳐나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더구나 이를 보다 못한 수많은 애국국민들이 국민저항권을 행사하여 지속적으로 광화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데도 그런 국민들의 뜨거운 목소리를 겸양의 자세로 듣고 따르지 않는 국회의원, 정치인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니 과연 이 나라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국민정신이 타락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우리나라의 애국국민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국민저항권을 발동하여 이 나라의 정신문화 특히 정치인들과 법관들과 선거관리위원회와 언론인들의 정신 상태를 올바르게 혁신해야 한다. 이들이 예(禮)와 겸양(謙讓)의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도록 해야만 한다.

 

2025. 4. 1.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