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있어도 밝게 보인다
엎드려 있어도 밝게 보인다
“잠겨서 엎드려 있으나 또한 심히 밝게 보이도다.[潛雖伏矣 亦孔之昭.]”<시경(詩經) 정월(正月)>. 이 말은 본디 화란(禍亂)이 도망할 곳 없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의미이나, 비록 군자가 향리(鄕里)에 묻혀 살아도 그 덕(德)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세상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시고 운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攝理) 즉 천리(天理)에 비추어 보면 지금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일은 물론이요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환하게 내다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리(天理)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비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있을지라도 그 마음과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이는 다름 아닌 신독(愼獨 혹은 槿獨: 비록 혼자 있을 때라도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몸과 마음의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인격수련의 으뜸으로 삼곤 하였다.
예컨대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이 신독(愼獨)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권면한 바가 있다.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고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효종 4년 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에서>.
그런데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에서는 심지어 “자식을 모르면 그 아비를 보고, 그 사람을 모르면 그 친구를 보고, 그 임금을 모르면 그 신하를 보고, 그 땅을 모르면 그 초목을 보라.[不知其子, 視其父; 不知其人, 視其友; 不知其君, 視其所使; 不知其地, 視其草木.]”라고 까지 하였으니, 우리가 평소에 나의 생각과 마음가짐과 행실에 흐트러짐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건대 내가 품은 생각이 비록 당장은 구체적인 모습이나 행동으로 외면에 들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내 마음과 양심에 각인(刻印)되어 지속적으로 나의 내면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은연중에 나의 안색이나 기품(氣品) 등에 배어 들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이 누구나 나이 사십 세가 넘으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리라.
이렇게 하여 나의 마음가짐과 생각이 결국은 나의 생명과 존재가치로 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찍이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 왕은 이를 깨닫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라고 말하였다.
2024.11.30.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