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와 행복
온유(溫柔, gentleness)와 행복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救主)로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은 그 자녀가 내세(來世)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이 행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원하신다. 즉 우리 자신의 인격이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의 많고 적음, 혹은 외적인 조건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줄로 생각하여 돈을 모으고 집을 바꾸고 직장을 바꾼다. 그러나 무엇을 바꾸어도 나의 인격이 변화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
즉 행복을 누리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특히 온유한 마음의 인격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기를 “온유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5)라고 하였다. 마음이 온유한자는 미래의 하나님의 영토 즉 천국을 차지 할 것이란 뜻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데서 온 말이다. 또 그는 이르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은 11:29)고도 하였다.
온유하디고 함은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을 아는 겸허(謙虛)함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을 일컫는다. 즉 분출되는 욕망, 힘 등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와 소통함으로 다스리고 절제하여 인내하며, 약해지거나 비겁하지 아니하며, 동정심이 많고, 의(義)를 위해서는 정당하게 싸우고 희생(犧牲)할 줄 아는 인격체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온유한 사람은 왜 행복해질까?
먼저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선한 자가 불이익을 당하고 악한 자가 형통(亨通)하기도 한다. 온유한 자는 이런 상황에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온유한 사람은 이웃과 화목(和睦)하기에 행복해진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격려한다. 칭찬을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고 무시(無視)와 멸시(蔑視)를 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이해하려하고 참고 분노하지 않는다. 교만과 의롭지 못한 분노는 결국 그 자신을 파멸(破滅)시키는 쪽으로 이끌어간다.
셋째로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이기에 행복하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출생, 약점, 용모 등도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 하나님이 섭리(攝理)하심과 모든 것을 합력(合力)하여 결국 선을 이루시는 줄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의 죄과(罪過)들이 하나님에게서 용서받았음을 알고 자신을 용납(容納)할 줄 알아 죄의식 속에 더 이상 헤매지 않는다.
넷째로 온유한 사람은 의(義)를 위해 정당하게 싸우다 어려움을 당해도 하늘나라의 상급(賞給)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큰 위안(慰安)과 기쁨을 가진다.
이와 같은 온유한 마음은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온전(穩全)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고 그와 소통함으로 성령(聖靈, Holy Spirit)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온전한 온유함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달라고 빌기 전에 성경 말씀을 힘써 배우고 온유한 마음,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해 나가야 비로소 행복의 길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냥 복을 달라고 빌기 만하는 것은 바로 우상숭배이며 미신(迷信)을 믿는 것으로 이는 불행의 씨앗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성경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전에 이미 후손들에게 남긴 가훈(家訓)에서 이르기를 “마음과 성품을 성실히 가져 행동과 마음이 다 공경(恭敬)으로 하고 사리를 분명히 알아서 독실(篤實)하게 믿고 힘써 행하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서라도 조심하여 사사롭고 간사한 생각이 싹 트지 못하게 하여라. 분한 생각을 경계하고 욕심을 막고 모든 잡념을 깨끗이 몰아내어 마음을 맑게 하여라.”고 하여 유사(類似)한 말씀의 교훈을 남겼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반은총(一般恩寵)“에 해당되는 것으로 진리는 동서고금(東西古今)에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2018.11.22.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