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聖心)을 기르자
성심(聖心)을 기르자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인류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는데, 그 첫머리가 “마음(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이다.
철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tabula rasa(타불라 라사)’란 용어가 있다. 잡념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일컫는다. 세상의 욕심과 야심, 탐심과 명예욕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용어를 ‘백지상태 순백의 마음’으로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다는 말은 바로 ‘tabula rasa’를 일컫는다. 이런저런 욕심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 백지 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어찌 Tabula rasa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한 ‘가난한 마음’은 처음부터 오염되지 않고, 얼룩지지 않은 마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얼룩지고 상처 받은 마음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나와서 다 쏟아놓고 사(赦)함을 받아 깨끗하게 된 마음을 일컫는다. 마치 쓰레기통 같이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진 마음을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다 쏟아놓고 깨끗하여진 마음, 비워서 가난하여진 마음을 일컫는다.(김진홍 목사).
이러한 마음 비우기를 백강 이경여 선생은 성심(聖心)을 기르도록 하라고 표현하며 가장 먼저 힘써야할 덕목으로 효종대왕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한 바가 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받는 것이 많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여 그 하나만 받아들이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백강 이경여 선생, 1653년 효종4년 7월2일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에서)
성경에서나 백강 선생의 생각에서나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는 일은 정치는 물론 세상만사 중에 누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2023.12.11. 素淡